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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울나라의 앨리스'

CoLoR (BLOG)

유치찬란한 대화 모음집

2007.09.28 19:23

삶을 산다는 것.

조회 수 4389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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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치 시간이 영원할 것 처럼 살아갑니다.
아무 생각없이 시간을 흘려 보내기도 하고,
너무 느긋하게 일을 처리하기도 하지요.
꼭 해야 할일들을 미뤄두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시간을 소비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신 시간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끝이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너무 당연한 말이어서일까요?
저도 그렇고, 사람들은 그 사실을 너무 잘 잊는듯합니다.
주어진 하루를 살아감에 있어,
또 다시 오늘 하루를 주신 것을 감사하고
이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미래는 막연하게 다가와서,
현재는 쏜살같이 지나가고,
과거는 영원히 고정된다.'는 어느 현자의 말이 생각납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막연한 미래가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과거들이 새로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시간이란 미래와 과거밖에는 없습니다.
현재라는 것은 미래가 과거로 바뀌는
그 찰나의 '현상'이지 어떠한 '시간'이 아닙니다.
현재라는 변곡점에서 우리가 어떠한 일을 하는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과거가 되어버리며, 그것이 미래를 결정합니다.
이 현재에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는 각자에게 달려있습니다.

시간을 무조건 아껴써라, 계획하고 열정을 다바치라는 말이 아닙니다.
시간을 아껴서 무조건 열심히 사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지요.
또 시간이 너무 없지도 않다는 다행스러운 사실을 기억하세요.
너무 시간에 쫒겨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중요한 것을 항상 기억하고 있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내 시간의 끝이 언제일지 모르니, 그 중요한 것들을 위해
서두름 없이 그리고 멈추지 않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잘 하지 않는 중요한 것들,
더 시간이 가기전에 당장 한 번 해봅시다.
소중한 사람을 위해 편안한 시간을 준비하기, 가족에게 사랑한다 말하기,
나를 찾아 여행다녀오기, 만나는 사람에게 행복을 전해주기,
감사의 말들, 공손한 사과, 잦은 연락, 크게 웃기...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잊고서,
그렇게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모모'에 나오는 말로 글을 마무리 짓습니다.

"시간을 알뜰하게 쪼개 썼지만 손톱만큼의 자투리 시간도 남지 않았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시간은 수수께끼처럼 그냥 사라져 버렸다.
그의 하루하루는 점점 더 짧아졌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나중에는 그 속도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어느새 일주일이 지났는가 하면, 한 달이 지나갔고,
한 해, 또 한 해, 또 한 해가 후딱 지나갔다.

그 시간들이 지금 어디로 갔는지 심각하게 생각해 볼만도 했다.
시간을 아끼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그런 질문은 하지 않았다.
하긴 시간을 아끼는 사람들이 옛 원형극장 인근 마을 사람들보다
옷을 잘 입긴 했다. 돈을 더 많이 벌었기 때문에
더 많이 쓸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무언가 못마땅한 기색이나 피곤함,
또는 불만이 진득하게 배어있었다. 눈빛에는 상냥한 기미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물론 그들은 "아무튼 모모에게 가 보게!"와
같은 말은 모르고 있었다.

5분 안에 끝나지 않으면 그들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심지어 여가시간까지도 알차게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일을 기쁜 마음을 갖고 또는 애정을 갖고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것은 방해가 되었다.
아무도 자신의 삶이 점점 빈곤해지고, 획일화되고,
차가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은 삶이며, 삶은 가슴속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시간을 아끼면 아낄수록 가진 것이 점점 줄어들었다."
  • satski 2007.12.28 12:41
    시간은 하나의 수레바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돌고 또 돌아 변화하고 살아가고 죽어가고 계속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조회 수 294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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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9261259138_1.jpg

어느 철학 수업 시간.
"오늘은 과학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 문제점에 대해서 얘기해보도록 하지." 그리고는 무신론자인 철학과 교수가 한 학생을 일으켜세웠다.

"자네는 크리스챤이지?"
"네."
"그러면 자네는 신을 믿나?"
"물론입니다."
"신은 선한가?"
"당연히 선합니다."
"신은 막강하지? 신은 아무것이나 할 수 있겠군?"
"그렇습니다."
"자네는 선한가 아니면 악한가?"
"성경에 따르면 저는 악합니다."

"아, 성경!"
교수는 회심의 미소를 지은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말했다.

"내가 예를 하나 들어보겠네. 만약 지금 아픈 사람이 이곳에 있고 자네가 그 사람을 치료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세. 자네는 치료해줄 수 있네. 그러면 치료를 할텐가? 적어도 치료하려고 노력은 해보겠나?"

"네. 그럴 것입니다."
"그럼 자네는 선하군!"
"그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지? 아프고 불구가 된 사람을 기꺼이 도와주려는데 말야. 사실 우리가 할 수만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와주려고 할 걸세. 단지 신은 그러지 않을 뿐이지."

(침묵)

"신은 도와주지 않아. 그렇지 않은가? 내 동생은 크리스챤이었는데 암으로 죽었네. 예수에게 고쳐달라고 기도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어. 그런데 예수가 어떻게 선하다고 할 수 있지? 대답해 볼 수 있겠나?"

(침묵)

나이 든 교수는 다소 동정심이 생겼다.

"대답할 수 없지,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는 학생이 긴장을 늦출 수 있도록 책상에 놓인 물컵을 들어 물을 조금 마셨다. 철학에 입문하는 학생을 호되게 다루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해보지. 신은 선한가?"
"음.... 네."
"사탄은 선한가?"
"아닙니다."
"사탄은 누가 만들었지?

학생은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시....신이요."
"그렇지. 신이 사탄을 만들었어. 그렇지 않은가?"

노교수는 뼈마디가 앙상한 손가락으로 숱이 별로 없는 머리를 쓸어 올리고는 키득키득 웃고 있는 다른 학생들을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이번 학기는 아주 재밌는 학기가 될 것 같군요."

그리고는 크리스챤 학생을 향했다.

"말해보게.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나?"
"네. 그렇습니다."
"악은 모든 곳에 존재하지. 그렇지 않나? 그리고 신이 모든 것을 만들었지?"
"네."
"누가 악을 만들었나?"

(침묵)

"이 세상에 질병이 있는가? 부도덕은? 증오? 추악함? 이 모든 끔찍한 것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학생은 안절부절하며 대답했다.

"네."
"누가 만들었지?"

(침묵)

교수는 갑자기 학생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누가 만들었지? 대답해봐!"

마치 먹이를 노리는듯 교수는 학생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신이 모든 악을 만들었어. 그렇지 않은가?"

학생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차마 교수의 노련하고 집요한 눈빛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리고 갑자기 교수는 교실 제일 앞쪽으로 어슬렁 어슬렁 걸어갔고 모든 학생들은 이 상황에 푹 빠져들고 있었다.

"말해보게." 교수는 계속해서 말했다.
"이 세상의 모든 악을 창조했는데 어떻게 신이 선할 수가 있는가?"

그리고는 이 세상의 모든 악을 가르키기라도 하는 것처럼 팔을 휘휘두르며 물었다.

"모든 증오, 잔인함, 고통, 죽음, 추악함 그리고 모든 고통을 신이 만들었어. 그렇지 않은가?"

(침묵)

"어딜 가도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는 잠시 멈추고 다시 물었다.
"그렇지?"
마침내는 학생의 얼굴 가까이 다가가 속삭이듯이 물었다.

"신이 선한가?"

(침묵)

"자네는 예수를 믿는가?"

학생의 목소리는 갈라지기 시작했다. "네. 믿습니다."

노교수는 고개를 흔들며 유감스러운 듯 말했다.

"과학에서 우리는 오감으로 우리 주변의 세상을 인지할 수 있다고 하네. 자네는 예수를 봤나?"
"아뇨. 못 봤습니다."
"그러면, 예수가 말하는 것을 들어는 봤나?"
"아뇨."
"예수를 만져는 봤나? 맛을 보기는 했나? 아니면 냄새를 맡아봤나? 아니면 자네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감각기관으로 느끼기는 하나?"

(침묵)

"대답해보게."
"아뇨. 유감스럽게도 느끼지 못합니다."
"유감스럽게도 느끼지 못한다고?"
"네."
"그렇지만 여전히 신이 존재한다고 믿고?"
"...네..."

"그것이 믿음이란 것이군!" 노교수는 미소를 띄며 학생을 바라보았다.
"과학에서 말하는 실험, 확인, 증명의 방법에 의하면 자네의 신은 존재하지 않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네의 신은 지금 어디에 있지?"

학생은 대답하지 못했다.

"앉게나."

학생은 침통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또 다른 크리스챤 학생이 손을 들었다.

"교수님, 제가 이야기해도 되겠습니까?"

교수는 학생을 돌아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아, 크리스챤 선봉대중 한 명인가 보군. 그럼, 괜찮지, 말해보게나. 다른 학생들에게 자네의 지혜를 들려주게."

크리스챤 학생은 교실을 한 번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교수님이 말씀하신 점은 나름대로 논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질문이 있는데요. 이 세상에 온기(heat)가 존재할까요?"

"그럼, 온기는 존재하지."

교수는 대답했다.

"'냉기'도 있나요?"
"물론이네. 냉기도 있네."
"아닙니다. 없습니다."

교수는 얼굴이 굳어졌고 교실의 분위기는 갑자기 싸늘해졌다.

학생은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온기를 많이 가질 수는 있습니다. 고온, 초고온도 가능하고 저온도 가능하고 온도가 0 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냉기' 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요. 0도 아래로 458 도가 될 수는 있습니다. 그게 바로 절대 온도 0 라는 것이죠. 그렇지만 그 아래로는 내려갈 수 없습니다. 만약 '냉기'라는 것이 있다면 그 아래로 내려갈 수 있어야 겠죠. 그러니까 '냉기'라는 것은 단지 '온기'가 없다는 것을 나타낼 뿐입니다. '냉기'를 잴 수는 없어요. '온기'는 에너지이니까 온도를 잴 수 있습니다. '냉기'는 '온기'의 반대가 아닙니다. 단지 '온기'의 부재일 뿐입니다."

침묵이 흘렀고 교실은 적막해졌다.

"교수님, 어둠이라는 것이 있나요?"
"그건 바보같은 질문이군. 어둠이 없다면 밤이 있을 수가 없지 않은가? 도대체 뭘 말하려는 건가?"
"그러니까 어둠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거죠?"
"그렇네..."
"다시 한 번 틀리셨습니다. 어둠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의 부재를 표현하는 단어일 뿐입니다. 희미한 밝음, 보통 밝음, 강한 밝음은 있죠. 그리고 계속 적으로 '밝음'이 없으면 그것을 '어둠'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렇게 우리가 '어둠'이라는 단어를 정의합니다. 실제로 어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만약 존재한다면 어둠을 더 어둡게 만들수도 있어야 되고 어둠을 병에 담을 수도 있겠죠. 어둠을 병에 담으실 수 있겠습니까, 교수님?"

교수는 학생의 모욕적인 발언에 힘들게 웃었다. 그리고 이번 학기는 흥미진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네의 요점이 뭔지 말해주지 않겠나?"
"네. 교수님.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교수님의 철학적 가정에 오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수님의 결론에도 오류가 있을 수 밖에요."

교수는 화가 났다.

"오류가 있다고? 아니 어디서 감히!"
"제가 그 이유를 설명해도 되겠습니까?"

다른 학생들은 숨죽여 듣고 있었다.

"설명해보게, 그래 설명해봐."

교수는 화를 내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쓰며 말했다. 그리고는 다른 학생들을 조용히 시켜 크리스챤 학생이 계속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교수님은 이분법(duality)을 가정하고 계십니다." 학생은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는 식이지요. 선한 신과 악한 신을 가정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신의 개념을 우리가 크기를 잴 수 있는 어떤 유한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렇지만 교수님, 과학은 심지어 우리의 생각조차 설명하지 못합니다.

과학에서 우리는 '전기'와 '자기'를 이야기하지만 우리가 볼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죽음을 삶의 반대라고 보는 것은 '죽음' 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망각한 결과입니다. 죽음이란 삶의 반대가 아니라 삶의 부재입니다. "

학생은 옆 자리의 학생이 가지고 있던 신문을 들어 보이며 계속했다.

"이 신문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저질적인 신문입니다. 자, 그렇다면 부도덕이라는 것이 있을까요?"
"물론이지. 잠깐만, 이봐..."
"다시 틀리셨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부도덕이라는 것은 도덕의 부재일 뿐입니다. 불의라는 것이 있을까요? 아뇨. 불의란 정의의 부재입니다. 악이 있을까요?"

학생은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는 다시 물었다.

"악이란 선의 부재가 아닐까요?"

너무 화가 난 교수는 얼굴 색이 변하고 말도 안 나올 지경이었다.

학생은 계속했다.

"이 세상에 악이 있고, 우리 모두가 그걸 알고 있다고 하죠. 신이 만약에 존재한다면, 혹시 악을 통해서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신이 성취하려는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성경을 보면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 개개인이 자유 의지로 악을 대신해서 선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라고 나와있습니다. "

교수는 치를 떨며 말했다.
"철학자로서, 나는 이 문제가 우리가 무슨 선택을 하는지와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네. 현실주의자로서, 나는 신의 존재나 다른 어떤 신학적인 요소들을 현실안의 공식안에 끼워 맞출 수가 없네. 왜냐하면 신은 관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지 않은가."

학생은 대답했다.
"저는 신의 도덕 기준을 이 세상에서 찾아 볼 수 없다는 것 만으로도 신의 존재를 알려주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문은 매주마다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서 수십억의 돈을 벌지 않습니까!
교수님, 지금 저희들이 원숭이에서 진화했다고 가르치시는 겁니까?"

"자네가 진화론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렇네. 그렇게 말할 수 있지."

"진화를 눈으로 보신 적이 있나요?"

교수는 학생을 차가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교수님, 아무도 진화가 진행되는 것을 본적이 없을 뿐더러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고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혹시 교수님 의견을 믿으라고 하시는 것은 아닌지요? 그러면 과학자가 아니라 목회자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일은 철학 논쟁중 일어난 일이니 내 눈감아 주지. 이제 다 끝냈나?" 교수는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니까 교수님은 선행을 해야 한다는 신의 도덕률을 믿지 않으신다는 건가요?"

"나는 있는 그대로를 믿네. 그것이 과학이지!"
"아! 과학요!" 학생은 갑자기 씩 웃었다.
"교수님, 과학은 인지 가능한 현상을 관찰하는 학문이라고 하셨지요. 그렇다면 과학에도 오류가 있습니다."

"과학에 오류가 있다고?"

교실은 갑자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학생은 교실이 잠잠해질때까지 서서 기다렸다.

"처음 학생에게 하시던 이야기로 돌아가서, 제가 예를 하나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교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학생은 교실을 둘러보더니 이렇게 물었다.

"교수님의 뇌를 본 적이 있는 사람?"

교실은 웃음 바다가 되었다.
그리고 학생은 당황스러워하는 노교수를 가리키며 다시 말했다.

"여기 있는 사람중에서 교수님의 뇌 소리를 들어본 사람, 아니면 만져봤거나 냄새를 맡아본 사람?"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학생은 유감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무도 교수님의 뇌를 감각 기관을 통해서 느껴보지 못한 것 같군요. 과학의 실험, 확인, 증명 방법에 따르면 교수님은 뇌가 없으십니다."

교실은 소란스러워졌다. 그리고 학생은 자리에 앉았다.

그 소란 와중에 검은 제복을 빼입은 중년 남자가 짧은 콧수염을 매만지며 일어섰다.

"이봐. 당장 교수의 두개골을 열어 뇌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면 어떨까?"

그 학생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게 무슨 소리죠? 당신은 누굽니까?"

중년 남자는 교단 앞으로 가서 교수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요즘은 의학 기술이 발달해서 두개골을 열어 본다고 사람에게 큰 위해가 되는 일은 없지. 그러면 지금 이 교수를 이 학교 병원으로 보내 두개골을 열어보면 어떨까? 아니, 그럴 것도 없지. 요즘은 단층 촬영 기법이라는 것도 있다던데 말이야. 눈으로 확인해 보면 어떨까?"

학생은 당황하며 일어섰다. 교실은 다시 정적 속에 잠겼다.

"그걸 확인해 본다는게 어떻다는 겁니까?"

중년 남자는 교수를 밀어내고 교단 위에 서서 그 학생을 노려보았다.

"자넨 한 가지 사실을 간과했어. 교수의 뇌는 언제든지 열어 볼 수 있지만 신은 그럴 수 없지. 신의 존재를 느낄 가능성이란 게 있기나 한 것인지 묻고 싶다. 자네의 말은 논리적으로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체가 없어."

학생은 다시 입을 열었다.

"신을 증명하진 못하겠지만 신을 부정할 수도 없는 것 아닙니까. 과학에도 오류란 것이 있습니다."

중년 남자가 턱을 괴고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전부 비논리적인 반박에 불과해. 이분법이 어쨌다는 건가? 자네는 신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그 학생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신은 성경에 나온 대로, 전지전능한 창조주입니다."

"그건 웃긴 설명이군. 우리의 생각이 신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고 했나. 그렇다면 자네의 뇌 속에 들어찬 그 신에 대한 생각들이야말로 자네의 신을 규정지어버리는 것이다. 이분법이든 뭐든 자네 역시 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그러면서 입으로만 떠들고 있지 않은가."

학생은 다시 말했다.

"하지만 성경은 신에 대해서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중년 남자는 어깨를 들썩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신은 절대선인 존재이자 이 세상의 악을 만들어낸 꽤나 악취미적인 작자가 되는 거로군. 자네는 신을 본 적도 없고, 만진 적도 없고, 냄새맡은 적도 없으며 관찰은 더더욱 해 본 일이 없지."

"하지만 그건 과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진화를 관찰한 일이 있습니까?"

중년 남자는 검은 제복의 옷깃을 접으면서 대답했다.

"있지. 37년간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핀치의 부리를 연구한 사람이 있다네."

학생은 이상한 얼굴로 물었다.

"다윈을 말하는 겁니까?"

"아니. 생물학자 부부. 그 둘은 그 짧은 시간 동안 핀치 부리의 변화과정을 관찰하고 진화방향을 추적,예측했네. 진화는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무작위적 돌연변이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네. 진화론 역시 진화하고 있어. 자네가 그렇게 만만히 볼 것은 못 되네."

남자는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가 끼워맞춘 이야기들 중 일부는 맞지만 일부는 틀렸어. 핵심적인 것이 말이지. 자네는 논점을 교묘히 흩뜨리면서 이 멍청한 교수에게 원하는 답을 유도시켰네. 빛의 부존은 어둠. 하지만 선의 부존재가 악인 것은 아니야. 자연과 인간 뇌 속의 개념을 혼동하지 말게. 아까 멍청한 답을 했던 저 학생이 이 교실에서 나간 후 자네를 찔러 죽인다면 어떨까? 자네의 돈을 빼앗기 위해서 말이지."

"그건 악한 행동입니다."

"그래. 악한 행동이지. 하지만 선의 부재는 아니야. 선의 부재라는 것은 자네가 칼에 찔려 피를 흘리고 죽어가고 있을 때 옆에서 지나가던 사람이 자네를 내버려두고 그냥 지나가는 것이지. 악한 행동은 분명히 개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자네 말대로의 관념이 인류 보편적인 것이라면 악하다, 나쁘다란 말은 생겨날 수가 없겠지. 선하지 않다, 좋지 않다로 모든 것이 해결될 테니까. 1984의 세계 같지 않은가."

학생은 아무 말이 없었다.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다면 내용 없는 반박과 성경에 의지하지 말고 과학적인 증거를 제시하게. 나머지는 전부 쓸데 없는 행동일 뿐이야. 나는 그런 것을 싫어한다."

학생은 제모를 눌러 쓰고 문 밖으로 나서는 중년 남자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굽니까?"

"1945년의 망령."  



퍼왔습니다.
  • satski 2007.12.28 12:46
    만약 신이 있다면 나에게 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는지를 묻고 싶습니다. 이 부질없는 목숨을 왜 태어나게 했는지를...

2007.07.19 20:26

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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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라는 말이 있죠. 안되~ 못써~ 라고 아이들에게 이를때 쓰는 말이요.

우리 말에 '맘마'가 있고, '지지'가 있습니다.

맘마는 좋은거나 맛있는거 줄때 어른들이 애들한테 해주는 말이고,

지지는 안된다, 잘못된거다 라는걸 말할때 쓰는 것이지요.

이 맘마만 알고 지지는 모르는 애들이 부모님의 과보호 속에서 자란

나약한 꼴불견들이 아닐까 합니다. 항상 좋은것만 옳은것만 쉬운것만

얻고 바라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이기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발음에도 나타나 있는데요, 맘마의 'ㅁ'발음은 쉬운 발음이랍니다.

하지만 'ㅈ'발음은 'ㄷ'과 'ㅂ'을 익힌 후에나 할 수 있는 어려운

발음입니다.

사람은 이 '지지'라는 말은 터득하고나서야 비로소 사람이 되는 것 아닐까

생각 합니다. 해야할 것과 참아야할 것을 구분 할 수 있을때 말입니다.

'지지'를 넘어서 '에비'라고 협박을 했던 우리나라의 봉건적 교육도 문제지만

해도 되는것과 안되는 것을 분별할 수 있게 가르치는

한국식 교육도 필요하다는 생각, 들지요?

(이어령 교수 책에서 일부 발췌.)
  • satski 2007.12.28 18:38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약하고 여리고 순수하고 착한 두 명의 사촌동생입니다. 그 아이들은 나의 보물이자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 아이들의 나의 유일한 희망이자 믿음입니다.

조회 수 268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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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는 않은 일이라 저도 때로는 잘 하지 못하기도 합니다만,
상대방의 의견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것은 대화에 있어 무척이나 중요한 일입니다.
상대의 의견이 옳지 않다고, 가끔 터무니 없다고 생각되더라도
'네가 잘못되었을 수 있는'것 만큼 '내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어떠한 주장이든, 그것이 자기 삶의 지지점이고 진리이고 그것을 위해
목숨을 내걸수 있을 정도라고 하더라도,
내가 가진 생각이 항상 옳다고 여기고 듣지 않으려는 것은 옳지 않은 행동입니다.
그런 사람과는 대화를 할 수 없습니다.
논쟁을 할 수 없습니다. 토론을 할 수 없습니다.
상대의 생각을 들을 수 없고,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 각자의 이야기만 하다 대화를 끝내게 됩니다.

상대의 말이 옳고 그르다고 이야기 하기전에 이미 '기분이 나쁘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됩니다.
자기 세계에 갇혀 지내지 마세요~ 정도 밖에 할 말이 없지요.
상대의 생각이 꿈쩍도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데,
이야기 할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자신을 자신의 생각속에 가두어 두지 마세요. 그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세상에 진실로 옳은 것은 없습니다.
간단하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어요. A라는 사람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B와 C가 옳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B와 C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또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구요, 그렇게 끝가지 가다 보면 '참으로 옳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는 겁니다.
어느 곳 어느 때에나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없습니다.(그래 보이는 것은 있습니다만.)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알수 없을지도 모르죠.

힘들겠지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그것이 옳다고 믿고 있지만
다른 사람 역시 나와 똑같이 다른 의견을 옳다고 믿고 있을 수 있으며
어느 것도 진짜 옳은 것은 아닐 수도 있고 혹은 둘다 진짜로 옳은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깊히 염두해 두고 겸혀하게 존중하며 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 satski 2007.12.28 18:42
    제가 사람을 못 믿는 이유가 있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거짓에 파묻혀 버리기 때문입니다.

조회 수 342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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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IQ는 114랍니다.
고3때 학력부 전산화작업을 몇일 하면서 제 IQ를 보게되었습니다. 그걸 보고 사실 좀 실망을 했더랍니다. 머리가 좋은 줄 알았거든요. 114면 평균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원래 IQ를 만들때는 100을 기준으로 평균보다 높으면 100이상, 평균 이하이면 100이하로 나오게 만들어 졌답니다.^^ 돼지 IQ가 80이라느니 하는 말은 믿지도 마시라~
돼지가 사람이 푸는 문제를 풀수 있을 턱이 없으니까요.)

사실 실망을 좀 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것 만은 아니었더랍니다.

저는 사실 머리가 좋지 않습니다. 예전부터 느끼고 있었죠. 비상하게 기억하고 빠르게 판단하는 그런 머리를 저는 가지고 있지 않아요. 가끔은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만, 늘 저보다 잘하는 사람들이 꼭 있게 마련이었으니까요. 그것들이 왜인지 저에게는 높은 벽같이 느껴지곤 했습니다.

그런데요,
다행스러운건,

신은 저에게 명석한 머리를 주지 않으셨지만, 그래도 적잖은 노력을 하면 따라는 갈수 있는 보통의 머리는 주셨다는 겁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 쉬지 않고 끙끙대고 손가락끝을 물어뜯어가며 노력하면, 일등은 아닐지라도, 커트라인 위로 가까스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는 되더라는 겁니다.
가까스로요.
그래서 저는 꾸준하게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아주 열심히 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되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무언가 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꾸준히 노력해야하는 것이고 그것이 어느 정도 몸에 배어버린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하지 않으면 떨어질 것이 뻔하니까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거죠. (대부분 귀찮아서 처음부터 안합니다. ^^;)
저는 1등을 해본적이 거의 없답니다.(공부뿐만이 아녜요~ ^^) 꼭 나 보다 뛰어나게 잘하는 사람들이 있었지요.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을 오르는 것 처럼, 한발 한발 구르지 않으면 뒤로 가버리거나 넘어지기 때문에 열심히 구르게 되는 그런 거겠죠?

열심히 노력해야, 겨우 남들만큼 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진건 오히려 제게 행운이 아니었나 합니다.
  • satski 2007.12.28 18:46
    신은 저에게 보물이자 소중한 존재인 언제나 싱그럽고 맑고 순수한 사촌동생들을 지키라고 태어나게 하신 것 같습니다.
  • Dreamy 2007.12.29 02:03
    사촌동생들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시나 봐요. 사촌동생들과 함께 행복한 날들 계속 됐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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