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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그라민 은행과 유누스 박사에 대한 글들을 모아봤습니다.
감동적인 내용입니다.


유누스 “담보는 ‘양심’… 돈 생기면 갚으시오”

[동아일보 2006-10-14 04:47]    


거리는 굶어죽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더럽고 낡은 집들에는 파리 떼가 우글거렸다.

1970년대 중반 방글라데시. 자연재해와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희망은 없어 보였다.

하루 종일 쭈그린 자세로 대나무 의자를 만들어 팔아 봤자 하루 벌이는 50페이샤(약 20원). 재료 구입비 200원이 없어 고리대금업자에게 매이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담보할 것이 없는 빈민들에게 은행 대출이란 결코 허락되지 않았다.

이들을 보며 무하마드 유누스 박사는 외쳤다.

“가난한 자들에게도 신용을 누릴 권리가 있다.”

13일 노벨 평화상 공동수상자인 유누스 박사와 그라민은행의 활동은 이렇게 시작됐다.

금 세공인의 아들로 유복하게 자란 유누스 씨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방글라데시 치타공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1974년 대홍수로 10만 명이 아사한 비극은 젊은 경제학자를 번민에 빠뜨렸다. 고민은 ‘적선이 아닌 자활’의 모색으로 이어졌다.

치타공대 인근의 조브라 마을을 거듭 방문해 연구한 끝에 27달러만 있으면 이 마을 주민들이 소규모 자영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42명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돈이 생기면 갚으라”고만 했다. 1976년에는 이른바 무담보 소액대출(마이크로 크레디트·Micro Credit)을 해주는 그라민은행을 설립했다.

‘마을’이라는 뜻의 그라민은행 운영 방식은 독특했다. 초기 대출자격은 재산이 없는 가난한 사람에게 한정됐다.

대출받는 데 보증이나 관련 서류를 요구하지 않았고, 돈을 못 갚는다고 해서 법적 책임을 묻지도 않았다. 대출금이 정해진 시간에 상환되지 않으면 ‘융통성 있는 대출’로 전환시켜 특별 관리했다. 3년이 지나도 못 갚으면 그대로 청산시켰다.

다른 은행들은 이 위험한 영업방식을 비웃었다. 그러나 유누스 총재는 대출자들의 경제적 자립을 독려하는 방식으로 마이크로 크레디트를 밀어붙였다. 5명으로 조를 짜야 대출이 가능하도록 규정해 서로가 신용을 관리 감독하도록 했다. 대출자들은 은행이 실시하는 다양한 경제 및 문화 프로그램에 의무적으로 참석해 각종 교육을 받았다.

1983년 정식 법인으로 인정받은 그라민은행은 이후 단 세 번을 제외하고는 매년 저축과 이자만으로 운영되는 무차입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대출금 상환율은 98%. 이자율은 최대 12%로 다른 은행보다 높아 저축도 몰린다. 경제 자립에 성공한 대출자들이 다시 예금을 하는 선순환도 궤도를 탔다.

그라민은행은 이제 방글라데시 전국의 2185개 지점에서 1만8151명의 직원을 거느린 대형 은행으로 성장했다. 2005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1년간 대출 총액만 6억8900만 달러에 이른다. 지난해 수익은 1500만 달러. 모든 이익은 자연재해를 관리하는 재활기금에 들어간다.

여성 대출자가 전체의 96%에 이르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여성이 남성보다 신용도가 높다는 판단 아래 적극적으로 대출해 준 결과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족관계에도 놀랄 만한 변화가 일어났다. 경제력을 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크게 높아진 것.

그라민은행의 운영 방식은 1980년대 중반 빌 클린턴 당시 미국 아칸소 주지사의 요청에 따라 미국에 전파된 것을 시작으로 오늘날 전 세계 52개국에서 시행되고 있다. 빈곤퇴치의 열쇠로 여러 국제기구와 사회단체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연구 대상이 됐다.

유누스 총재는 노벨 평화상 수상 소식을 듣고 “빈곤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기뻐했다. “그 꿈을 이루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말과 함께.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소액대출 시행 그라민은행, 무담보 대출도 상환율 98.85%



[한겨레 2006-10-14]


올해로 설립 30년째인 그라민은행은 방글라데시에서 1만2천명이 넘는 직원들이 1735곳 지점을 통해 6만여개의 마을을 대상으로 영업하고 있다.

이 은행은 1인당 평균 200달러의 소액 대출로 매년 5억달러 정도를 빌려주고 있다. 현재 총 대출 누적액만도 57억달러를 넘고 대출자 누계도 1700만명에 이른다. 이 나라 인구가 1억4100만명이니, 10% 이상이 이 은행의 혜택을 입은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누적 대출액 대비 상환율은 98.85%에 이른다. 이런 높은 상환율 때문에 30년 동안 적자를 기록한 해는 딱 3년뿐이라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이 은행은 5명이 조를 이뤄, 그 가운데 일단 2명이 대출을 받으면 나머지 3명은 대출자들이 상환한 액수 한도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독특한 대출규정을 가지고 있다. 또다른 특징은 대출 자격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래서 대출자에는 돈 한푼 없는 거지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이 은행의 지분 94%가 고객인 농촌 빈민들의 소유라는 점도 눈에 띈다. 나머지 지분은 방글라데시 정부가 가지고 있다.

또 경제활동이 어려운 기혼여성 등 여자들에게 전폭적으로 돈을 빌려줘, 여성들의 권익 신장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실제 그라민은행의 이용자 550여만명 가운데 여자가 96%에 이른다. 대출받은 빈민 가운데 58%는 빈곤을 어느 정도 탈출한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은행은 현재 사업영역을 넓혀 소액대출 이외에 주택자금 대출과 관개 및 어장 설비 대출도 다루고 있다.

무담보 소액대출 제도는 방글라데시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라민은행을 모델로 오늘날 무담보 소액대출 제도를 운영하는 기관은 100여개국에서 250곳이 넘는다.

유누스 박사는 과거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방글라데시에서 무담보 소액대출 제도만이 시계처럼 정확히 돌아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강성만 기자



그라민 은행 | 세상발견 2004/12/31 12:00  


나라님도 구제 못하는 것이 가난이라고 했던가? 이렇게 가난이라는 것은 일반서민
들에게는 벗어날수없는 굴레였습니다. 그것은 현재에도 마찬가지이며, 미래에도
똑같을 것입니다. 서민들이 대출을 받아 자영업을 하려해도 담보가 없다거나 신용
이 낮다거나 하는 등으로 은행에서 문전박대 당하기 십상이고, 그러다보니 서민
들은 비싼 사채를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서민들의 고민을 날려버리는 은행이 있으니 이 은행이 그라민은행입
니다. 이 은행은 방글라데시에 있는데 방글라데시는 극빈국가중 하나로 연소득이
220달러이고 인구밀도가 세계최고이며, 문맹율이 70%의 그야말로 구제불능의
국가입니다. 오죽하면 IMF조차 외면하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빈부격차가 엄청
커서 부자가 전체부의 9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못사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의 서민들에게 희망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라민
은행을 세운 유누스라는 치타공대학 경제학교수였습니다.


1974년 엄청난 기아가 닥쳤을때 길거리에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그는 고민을 했습
니다. 그래도 경제학자인데 경제적인 생각으로는 이것에 대한 해답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그때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느 여인을 보고서 이것이 가난의
되물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대나무의자를 만들어 파는데 돈이 없어 고리대금업자에게 비싼이자를
주고 대나무를 사서 대나무의자를 만들어파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곧 고리대를 갚기위해 대나무의자를 파는 식이었습니다. 이런 구조로는 그가 평생
늙어죽더라도 빚을 갚기는 불가능해 보였고, 기존 은행 시스템은 그 여인을 외면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강의실에서 강의하던 경제학은 죽었고 이런 빈민을 위해
서 경제적논리로 퇴출보다는 제도권금융기관에서 대출받게 해주는 평등한 기회를
주는 것이 빈곤을 퇴치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977년 그는 그라민(마을이라는 뜻)은행을 설립하였고, 곧 극빈층에게 50
달러에서 100달러의 소액대출을 실시하였습니다. 물론 대출서류보다는 자기자립을
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대출이 되었고, 이는 곧 짧은 기간에 성공을 거두게 됩니
다. 그러나 당시 경제전문가들은 이런 대출이 곧 파산을 맡이하게 되리라 비웃었
고, 그의 미국인 아내마저 왜그들을 도와야 하는가? 라는 말로 미국으로 돌아가자
고 설득하는 등 주변에서는 그의 실패가 곧 몇년안에 이뤄지리라 예상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위의 조롱이나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 은행은 방글라데시 최고의 은행이
되었습니다. 현재 3조 6천억원의 대출액과 98%에 이르는 원금 상환액, 그리고
대출자 240만명중 80만명이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습
니다. 이 수치는 방글라데시인구가 약 1억2000만명을 넘는 인구이므로 약 2%가 대출의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그중 약 30%이상이 가난의 굴레를 벗어났다면
어떤 빈민구제책보다 우수한 결과이며 또한 은행또한 어느 방글라데시 은행보다
우수한 재무구조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전세계적으로 새마을운동과 그라민은행의 사례는 빈민구제의 가장 큰 성공사례로
알려져 있으며 미국의 슬럼가지원정책도 이런 그라민은행의 사례처럼 소자본을
빌려주는 형태로 빈민을 구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보다 2/3의 국토에 1억
2천만명이 살고있는 나라, 공해가 심해 수만명의 아이들이 호홉기 질환으로 사망하며,
문맹으로 유엔의 도움없인 투표조차 하지 못하는 나라, 잦은 홍수로 농업생산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나라, 한마디로 별볼일 없는 나라가 방글라데시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못살게 된 이유는 가진자의 횡포로 평등한 기회를 가지지 못하는
나라가 되어버린 이유로 아직까지 유엔이 정한 최대극빈개발도상국의 오명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전에 말한 새마을 운동이나 그라민은행의 공통점은 못가진자에게 평등한 기회를
주는 것이 성공한 이유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은행가]라는 책은 그라만은행에
대한 내용인데 유누스가 한 말중 가장 중요한 말은 '가난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과 꿈이며, 돈은 단지 수단일뿐…' 이라는 말을 되새기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1 : 그라민 은행의 탄생  
name: 홍승완  
email: kmc21@dreamwiz.com

본문그라민 은행의 탄생
방글라데시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인 그라민 은행(Grameen Bank)이 있다. 이 은행의 설립자는 무하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이다. 그라민 은행의 시작은 19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6년 당시 방글라데시에 최악의 기아(飢餓)가 몰아 닥쳤다. 방글라데시의 수도인 다카의 길거리에는 굶어 죽은 사람들이 즐비했고 다른 지역의 사정은 더욱 안 좋았다. 치타공 대학의 경제학 교수로 재직 중이던 무하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는 자신의 눈앞에서 굶어 죽는 사람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게 된다. 그는 당시 자신이 받은 충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죽는 데에도 여러 방식이 있지만, 굶어서 죽는 것처럼 끔찍한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이 굶어 죽는다는 것은 죽음이 매초 매초마다 조금씩 다가와, 결국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어느 한순간 삶과 죽음은 서로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땅바닥에 서로 껴안은 채 웅크리고 있는 어머니와 자식이 우리와 같은 세상 사람들인지 아니면 이미 다른 세상으로 떠났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죽음은 너무도 조용히 다가와, 과연 언제가 그 때인지 알기가 힘들다.
이 모든 비극은 한 줌의 양식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멀지만, 죽은 이 남자나 저 여자는 그러지 못하였다. 아이가 울지만, 결국 젖을 먹지 못한 채 잠이 들어 버린다. 아마도 내일이면 아기는 울 힘조차 없을지 모른다.
나는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모든 문제에 해답을 제공하는 경제학 이론을 가르치면서 보였던 그 열성을 기억한다. 나는 이론이 가진 아름다움이며 조화에 감타하곤 했다. 그리고선 이 모든 이론에 환멸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길바닥에선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는데, 도대체 경제학 이론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로 결심하고 치타공 대학 주변의 조브라 마을을 돌아 다녔다. 그는 한 사람이라도 도울 수 있기를 바랐다. 마을을 돌면서 그는 주민들이 어떻게 살고 있으며 자신이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생각했다. 마을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유누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그가 만난 마을 사람 중에 수피아 베굼이라는 20대 여성이 있었는데, 그녀는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려 대나무를 사고 하루 종일 대나무 의자 하나를 만들었다. 의자가 완성되면 돈을 빌려준 고리대금업자가 그 의자를 가져갔다. 하루 종일의 작업을 통해 고리대금업자로부터 그녀가 벌어들이는 돈은 빌린 원금과 이자를 제외하고 남은 50페이사(미국 돈으로 2센트에 해당)였다. 하루에 50페이사, 그것이 전부였다. 그녀는 하루 벌어 하루를 겨우 살았고 작은 돈도 모을 수 없었다. 유누스는 그녀가 가여웠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생존 능력에 감탄했다. 그는 ‘만약 그녀가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리지 않고 대나무를 구입할 수 있다면, 그래서 그 의자를 직접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다면 그녀는 적어도 최악의 상황에서는 빠져나올 수 있겠구나’하고 생각했다.

유누스는 자신의 제자 한 명에게 조브라 마을에서 수피아 베굼 처럼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리는 바람에 매일 열심히 일을 하고도 돈을 모으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조사해보도록 했다. 조사 결과,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려 어려운 상황에 빠진 사람들은 42명이었고 이들이 빌린 돈은 모두 합해 856타카였다. 이 금액은 미국 돈으로 따지면 27달러에 해당했다. 문제는 이들이 하루 종일 정말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스스로의 힘으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유누스는 27달러 때문에 42가구나 되는 사람들이 어렵게 살고 있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 그는 42명에게 27달러를 빌려 주기로 하고, 이 사람들이 형편이 되면 그 때 가서 돈을 돌려받기로 했다. 유누스는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단돈 27달러로 42명의 생사여탈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현실에 낙담했다.

유누스는 조브라 마을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줌으로써 그들을 도울 수 있었지만 거기서 만족할 수 없었다. 가난에 빠져 생존을 위협받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도록 돈을 빌려 쓸 수 있는 방법을 제도적으로 마련하고 싶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개인적인 차원의 해결책이 아닌 보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제도권 내에 있는 기관이 가난한 사람에게 융자를 해주는 체제가 필요했고 그가 보기에 은행이야말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최적의 기관이었다. 그는 은행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확신을 갖고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큰 은행을 방문했다. 은행으로 하여금 가난한 사람들에게 좋은 조건으로 돈을 빌려 주도록 설득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은행 측은 여러 이유를 들어 그의 제안을 거부했다.

일반 은행들이 봤을 때 가난한 사람들은 ‘상대 할 수 없는 부류’였다. 가난한 사람들은 글을 읽거나 쓸 줄 모른다.(1970년대 후반 방글라데시의 인구 중 75%가 문맹이었고 농촌 지역의 경우 그 수치는 더 높았다.) 따라서 융자와 상환에 필요한 서류들을 작성할 수 없다. 게다가 가난한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은 은행에 맡길 담보가 없다. 담보가 있어야 융자가 가능하다는 것이 은행의 규칙이었다. 은행 측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융자를 해주는 사업으로는 은행이 수익을 거둘 수 없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유누스는 가난한 사람들은 소액 융자를 통해서 가난을 벗어 날 수 있기 때문에, 은행에서 큰 돈이 아니라 적은 돈을 융자해줄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은행이 평균적으로 융자하는 액수와 비교하면 그가 제안한 소액 융자로부터 은행이 얻을 수 있는 수익은 너무 적었다.

은행의 설명을 들으면서 유누스는 ‘일반 은행의 융자 프로그램은 부자와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은행 세계의 저변에는 ‘가진 자는 가진 것만큼 더 쉽게 가진다’와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앞으로도 가질 수 없다’라는 두 가지 법칙이 흐르고 있음을 발견했다. 유누스는 은행들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그릇된 편견에 빠져 ‘재정적 인종차별’을 자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은행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유누스는 자신이 직접 가난한 사람들의 여건에 맞춘 여신 시스템을 만들고 이런 시스템으로 작동되는 은행을 설립하기로 결심했다.

1976년 어느 날 42명의 마을 주민들에게 27달러를 빌려준 것이 시작이었다. 27달러로 시작된 유누스의 실천은 3년간의 그라민 은행 프로젝트로 확대되었고, 3년간의 실험기간을 통해 유누스를 포함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은 의미 있는 성공과 발전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1983년 10월 2일 정식으로 그라민 은행(Grameen Bank)이 설립되었다.(‘그라민’은 ‘농촌의’ 혹은 ‘마을의’이란 의미이다) 그라민 은행은 방글라데시 최초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이자 ‘소액 융자’(microcredit) 은행의 원조가 됐다. 그라민 은행의 목적은 ‘빈민구제’였는데, 유누스의 표현을 빌리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난을 지구로부터 몰아내는 것’이다. 무하마드 유누스는 그라민 은행이 추구하는 목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2050년이 되면 전세계가 마침내 가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지구상의 그 어느 누구도 가난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를 바란다. 그 때가 되면 ‘가난’이란 말은 의미를 상실하고, 다만 역사적 의미로만 존재했으면 하고 소망한다. 가난은 박물관에나 전시되는 과거의 유물이 되어 있고, 문명화된 세계에서는 그 어느 곳에서도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박물관을 찾은 초등학생들이 이 과거의 유물을 보면서 지난 시대에 창궐했던 끔찍한 모습을 떠올리며 치를 떨 것이다. 그러면서 이 아이들은 21세기 초두에 이르도록 조상들은 어째서 그런 처참한 실행을 그대로 방치했는지 의아해할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2 : 그라민 은행의 성과  
name: 홍승완  
email: kmc21@dreamwiz.com

본문
그라민 은행의 성과
1983년 10월에 설립된 그라민 은행은 그 동안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다. 우선, 규모면에서 보면 이 은행은 2003년 기준으로 1200개 지점에 2만 명이 넘는 직원과 300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대형은행으로 성장했다. 그라민 은행의 직원들은 매주 300만 가량의 사람들을 집으로 방문한다. 매달 그라민 은행이 융자해주는 금액은 3,500만 달러를 넘으며, 같은 기간 거의 동일한 액수의 돈이 상환된다. 이제까지 그라민 은행이 융자해준 총 금액은 43억 달러를 넘는다. 그라민 은행의 융자 프로그램은 방글라데시를 넘어 58개국에 퍼져 나갔으며, 국내에도 2000년 6월 그라민 은행 한국지부가 ‘신나는 조합’이라는 이름으로 설립 되었다.

그라민 은행의 원금 회수율은 98%를 넘는다. 돈을 빌려간 100명 중 98명이 돈을 갚는다는 것이다. 방글라데시 농업은행과 산업개발은행의 원금 회수율이 각각 30%와 10%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라민 은행의 98%라는 회수율이 얼마나 높은 수치인지 알 수 있다. 여기에 그라민 은행이 빈민층에만 융자를 해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은 더욱 빛나는 성과이다.

그라민 은행이 추구하는 목표는 ‘융자를 받은 회원들이 즉각적인 수익을 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회원들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을 도와주고 그들의 전반적인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그라민 은행은 융자를 받은 회원들이 비회원들에 비해 주택 보유율, 영아 사망률, 피임기구 사용, 위생 시설 확보 등 전반적인 삶의 질 면에서 어떠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지 알아보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한다. 여러 언론과 그라민 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은행의 융자를 받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주거환경과 삶의 질에서 의미 있는 개선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그라민 은행이 제공하는 주택 융자를 통해 1997년까지 45만 가구가 자기 집을 갖게 되었고 15만 가구는 살고 있던 집을 보수할 수 있었다.

그라민 은행의 높은 원금 회수율과 융자를 통한 회원들의 삶의 질 개선은 이 은행이 이룩한 전체성과 중 일부에 불과하다. 그라민 은행은 방글라데시의 수십만 가정의 운명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다. 그라민 은행이 외부에 의뢰하여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그라민 은행은 지난 10년 동안 융자를 해준 사람의 3분의 1을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했다. 또한 3분의 1은 가난의 문턱을 넘어서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그라민 은행은 한 가정이 가난에서 벗어났는지를 판단하는 간단하고 명확한 기준을 갖고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 식구들이 비가 새지 않는 집에서 살고,
- 집에 위생시설이 갖추어져 있어야 하고,
- 깨끗한 물을 쓸 수 있어야 하고,
- 매주 300타카(8달러)를 상환할 수 있어야 하고,
- 학령에 든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다녀야 하고,
- 모든 식구가 하루 세 끼 밥을 먹어야 하고,
- 식구들이 정기적으로 의료검진을 받아야 한다.

융자를 받은 어느 가정이 돈을 잘 활용하여 수익을 늘리고 이 기준을 충족시킨다면 그 가정은 가난에서 벗어난 것이다. 다음은 그런 가정 가운데 한 집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에라 베굼 여인은 1959년 생으로, 다카 주(州) 모노하르디 군(郡)에 있는 키라티 카파시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농사일을 하였는데, 딸자식 여섯을 제대로 키우지도 못하다가 지참금을 마련할 수 없어 그녀를 어느 장님에게 시집보냈다. 하에라 연인과 그녀의 남편은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았는데, 너무 간난해서 아이들 셋을 제대로 먹이질 못했다. 어느 날 하에라 여인은 자기 남편에게 그라민 은행에서 융자를 얻으면 어떻겠느냐고 했는데, 남편은 그라민 은행이 이슬람을 말살할 목적으로 세운 은행이라고 하면서 은행과 거래를 하면 당장 이혼하겠다고 위협을 하였다.

하지만 하에라 여인은 몰래 이웃 마을로 가서, 그라민 은행 사람들이 은행의 규칙과 운영방식에 대해 알리는 설명회에 참석하였다.

하에라 여인은 그룹을 지은 여자들이 처음으로 그라민 은행 규칙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지 물어 보는 구두시험을 치르는 동안 몹시 불안해하였다. “저는 일생동안 제가 쓸모없는 사람이란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어요. 어릴 적에는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부모님께 재수가 없다는 소릴 들었어요. 부모님은 지참금이 한 푼도 없었거든요. 어머니는 내가 태어났을 때 살려 두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얘기를 항상 하셨어요. 전 감히 융자를 받을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돈을 갚을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함께 그룹을 지은 여인들이 아니었더라면, 하에라 여인은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마침내 이 여인이 2,000타카(50달러)의 융자를 받았을 때,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하에라 여인과 같은 그룹의 여자들이 그녀에게 그 돈으로 송아지 한 마리를 사서 키우고, 묘판을 사서 심으라고 권하였다. 이리하여 그녀의 아버지가 송아지 한 마리를 끌고서 그녀의 집에 왔을 때, 이 사실을 안 그녀의 남편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이혼을 하겠다고 했던 말을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그 로부터 일 년 후 하에라 여인은 원금을 갚았고, 두 번째 융자를 얻어서 땅을 빌리고는 거기에 바나나 나무 60그루를 심었다. 나머지 돈으로는 두 번째 송아지를 샀다. 오늘날 하에라 여인은 저당이 잡혀 있긴 하지만 땅을 소유하고 있고, 염소와 거위, 닭을 키우고 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저희는 요즘 하루에 세 끼를 모두 먹어요. 아이들이 배를 곯는 일도 없어요. 일주일에 한 번은 고기도 먹는 걸요. 저는 아이들을 학교에도 보내고, 중 ? 고등학교, 대학교에도 보내서 저처럼 불행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요. 제가 지금 그라민 은행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아세요? 그라민 은행은 저에겐 어머니 같은 존재예요. 아니죠, 그 정도가 아니에요. 어머니 ‘같은’게 아니라, 저희 어머니예요. 새로운 생명을 주었거든요.”

자, 이것이 그라민 은행의 성과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3 : 그라민 은행의 기업 이념과 운영 방식  
name: 홍승완  
email: kmc21@dreamwiz.com

본문그라민 은행의 기업 이념과 운영 방식
그라민 은행을 이끄는 원동력은 무하마드 유누스 행장과 그라민 은행의 확고한 경영 철학과 독특한 운영 방식에 있다.

그라민 은행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이다. 이 은행은 겉으로 보기에는 기업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비영리 단체에 가깝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라민 은행은 남다른 사명감과 책임감을 보여준다. 하지만 ‘은행’이라는 역할로 보면 이 은행은 이윤을 추구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노력한다. 금융기관으로는 독특하게 그라민 은행은 사회적 책임과 이윤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무하마드 유누스는 그라민 은행의 정체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그라민 은행이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고, 직원들의 동기 부여가 약하고 또 헌신적으로 일하지 않는다면, 마침내는 망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라민 은행이 민간 기업을 모델로 삼건 비영리 단체를 모델로 삼건 간에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우리 그라민 은행의 원동력이 영리 추구에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우리 그라민 은행도 수익을 창출하고, 비용을 충당하고 미래를 개척하고, 계속 발전하는 노력을 한시도 늦춘 적이 없다. 하지만 그라민 은행의 가장 커다란 관심사는 융자를 받는 회원들이 즉각적인 수익을 내도록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 회원 주주들의 장기적인 복지 향상에 있다. (......)
나는 그라민 은행 활동을 통해서 이윤 추구만이 자유주의의 유일한 원동력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거기에는 사회적 목표라는 참 가치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 점을 잊지 않고 기업 활동을 통해 사회적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면 이윤 추구만을 꾀하는 그 어떤 기업과도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이를 통해 보다 나은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란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그라민 은행의 업적은 주주들에게 주어지는 배당금이란 잣대만으로 측정되어서는 곤란하며, 배당금의 액수가 어떠하든 간에 우리의 활동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몫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치적 이데올로기란 측면에서 볼 때 그라민 은행의 철학은 어디에 위치하는가? 좌파? 우파? 중도파? 그라민 은행은 정부의 개입을 가능한 한 최소한으로 줄이고자 하는 입장이다. 또한 그라민 은행은 시장경제를 옹호하고, 창업을 권장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그라민 은행은 우파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라민 은행은 또한 사회적 목표를 성취하고자 노력한다. 예를 들면 가난을 퇴치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고, 여성들로 하여금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남녀평등을 지향하고, 노년층의 복지를 보장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라민 은행의 꿈은 이 세상에서 가난과 사회보조금을 몰아내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 있어서 기존의 제도권이나 이윤추구에 목표를 두고 있는 일반 기업들과 다르다.
그라민 은행은 경제적 자유주의를 신봉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기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기업이나 사회 분야에 개입하는 것은 찬성하지 않는다. 국가의 역할은 기업들로 하여금 사회 분야에 적극 참여하도록 권장하는 것에 그쳐야 한다. 이런 점들로 볼 때 그라민 은행은 좌파에 속한다.
여러 모로 살펴볼 때, 그라민 은행은 정치적으로나 전통적 관점에서 어느 한쪽으로 분류하기가 곤란하다.”


● 그라민 은행의 가치와 규율: ‘우리들의 결심 16가지’
그라민 은행은 1978년부터 은행이 믿고 지향하는 가치와 직원들이 지켜야할 규율을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당시는 그라민 은행의 실험기로, 정식으로 은행이 설립되기도 전이었다. 초창기에는 지역 책임자들이 매년 회합 갖고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시간을 가졌다. 두 번째 해부터 회합의 범위가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각 센터를 맡고 있는 책임자들도 참여했다. 1980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전국 규모의 회합을 개최하였고 회합 중에 결정된 사항들을 문서화했다. 1982년 두 번째로 전국 규모로 열린 회합에서 참석자들은 ‘우리들의 결심 10가지’를 정리하여 공표하였다. ‘우리들의 결심 10가지’는 1984년 조이데브푸르에서 갖은 회합에서 ‘우리들의 결심 16가지’로 수정되었다. 오늘날 그라민 은행의 모든 지점에서는 직원들이 ‘우리들의 결심 16가지’를 소리 높여 외치고, 찾아오는 사람마다 직원 스스로가 이 문안에 적힌 대로 임하고 있는지 일일이 확인을 한다. 1984년 이후 이 문안은 더 이상 수정되지 않았다. 수정하지 않는 대신에 그라민 은행의 사람들은 16가지 조항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들의 16가지 결심’에 대해 유누스는 ‘이 문안에 포함된 조항들은 그라민 은행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존재이유와 삶의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들의 결심 16가지>

1. 우리는 그라민 은행이 정한 네 가지 원칙을 우리의 생활 속에서 준수하고 실천한다. 이는 규율, 단합, 용기, 성실이다.
2. 우리는 우리의 가족에게 번영을 가져다준다.
3. 우리는 허름한 집에서 살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집을 수리하고,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새 집을 짓는다.
4. 우리는 야채를 재배해서 먹고, 남는 것은 판매한다.
5. 파종기에는 가능한 한 많은 씨앗을 뿌린다.
6. 우리는 가능한 한 아이들을 적게 갖는다. 우리는 이 지출을 줄인다. 우리는 건강을 돌본다.
7. 우리는 자녀를 교육시키고, 교육비용을 충당한다.
8. 우리는 자녀들의 위생과 환경을 생각한다.
9. 우리는 화장실을 만들어 사용한다.
10. 우리는 깨끗한 우물에서 길은 물을 마신다. 만일 물이 깨끗하지 않으면 끓여 마시거나 명반으로 소독한 후 마신다.
11. 우리는 아들을 결혼시키며 지참금을 받지도 않으며, 딸을 결혼시키며 지참금을 주지도 않는다.
12. 우리는 정의롭지 못한 일을 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정의롭지 못한 일을 할 때는 저항한다.
13. 우리는 더욱 높은 수익을 얻기 위해 집단 투자 비율을 늘려 나간다.
14.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을 돕는다. 우리는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돕는다.
15. 우리는 센터에서 규율이 깨진 것을 보면 이를 바로잡는다.
16. 우리는 센터에서 신체를 단련한다. 우리는 모든 모임에 단체로 참가한다.


‘우리들의 결심 16가지’는 몇 개의 조항을 제외하고는 가난을 벗어나고 생활의 질을 높이는 것과 관련이 깊다. 겉만 보면 선진기업의 비전 선언서나 기업이념에 비하면 매우 기본적이고 소박해 보인다. 하지만 방글라데시의 상황과 문화를 고려하면 그라민 은행이 선택한 16가지 결심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한 실용적인지 이해할 수 있다.

방글라데시에 대해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노동인구의 3분의 2가 농민이고 국내총생산(GDP)의 약 30%를 농업이 차지하고 있지만, 높은 인구 증가율과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매년 식량 부족 현상을 겪는다. 국토의 대부분이 낮은 평지이기 때문에 우기에는 하천의 자연범람으로 국토의 5분의 2가 물에 잠긴다. 출생률은 1000명당 30명인데 비해 영아사망률은 1000명당 66명에 달한다. 1억 명이 넘는 인구 중 75%가 글을 읽거나 쓸 줄 모르고, 시골 여성의 문맹율은 85%에 달한다. 여성 차별이 심하여 교육을 받는 여성은 극히 소수이다. 또한 부녀자를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하는 관습인 ‘푸르다’(Purdah: 여성의 격리, 은닉, 또는 사교적 관계를 갖지 않음)의 영향으로 여성들에게는 여러 종류의 제약이 따른다. 전통적으로 여성이 시집을 갈 경우 남자에게 지참금을 받쳐야 한다. 종교는 이슬람교가 80%를 넘게 차지하고 있으며, 다른 종교에 대해 상당히 배타적이다. 역사적으로 독재와 내란이 빈번하게 발생하여 정치 상황이 불안정하고 정당 간 대립이 극심하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실업률은 40%에 달한다.

‘우리들의 16가지 결심’은 그라민 은행의 직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그라민 은행의 주주와 회원(고객) 모두에게 적용된다. 그라민 은행의 지배구조를 보면, 정부가 약 8%의 주식을 갖고 있지만 나머지는 모두 은행의 회원들이 갖고 있다. 회원이 주주인 셈이다. 대부분의 주식을 회원들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라민 은행의 가치와 규율은 직원을 넘어 주주와 회원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적용된다.


● 소액 융자(microcredit) 방식과 까다로운 자격 조건
그라민 은행은 ‘담보 없는 소액 융자’를 제공하고 있다. 그라민 은행의 설립 초창기에 많은 금융 전문가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담보 없이 대출을 해주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라민 은행이 행하는 소액 융자가 한 가정의 경제적 여건을 호전시키기에는 너무 적은 액수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담보 없이 이루어지는 소액 융자 시스템이 담보를 안고 하는 융자보다 훨씬 효율적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모든 것은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제공한 소액 융자의 원금 상환율은 98%를 넘었고 소액 융자를 받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가난에서 벗어났다.

그라민 은행의 목표는 ‘부자 만들기’가 아니라 ‘가난 극복’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라민 은행과 유누스는 자활 능력이 갖춰지지 않은 사람에게 한 번에 많은 돈을 빌려주면 오히려 어려움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생각 했고, 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열심히 하면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믿었다. 소액 융자는 희망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이미 1970년 대 후반 진행된 실험 프로젝트를 통해서도 소액 융자의 효과는 확인됐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제조 공장이나 큰 음식점을 운영하는데 드는 돈이 아니라, 대나무 의자나 빵, 혹은 옷 등을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값이었다. 일반 은행의 경우를 보면 거액의 융자가 여러 문제점들을 동반하는데 반해, 소액 융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경제적 창의성과 활력을 준다. 방글라데시의 기업가나 부자들은 정치인들과 검은손을 잡거나 법을 교묘히 빠져나감으로써 빌린 돈을 갚지 않는다.( 그래서 산업개발은행의 원금 회수율이 10%에 불과한 것이다) 이에 반해 가난한 사람들은 이미 자신들에게 아무도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라민 은행으로부터 빌린 돈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다른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절박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

담보가 필요 없다는 점만 보면 그라민 은행에서 돈 빌리는 것이 쉬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은행의 융자 조건은 다른 어떤 은행보다 독특하고 까다롭다. 독특한 까닭은 이 은행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고, 까다로운 이유는 그라민 은행이 하는 일은 ‘자선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자활을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그라민 은행은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면 융자를 해주지 않는다. 경제적 수입 기준으로 하위 25%는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가난할수록 돈 빌리기가 쉬운 곳이 그라민 은행이다. 이 원칙은 방글라데시뿐만 아니라 그라민 융자 프로그램이 적용되는 모든 국가와 지역에 적용된다. 그라민 은행 한국지부인 ‘신나는 조합’도 마찬가지이다. ‘신나는 조합’의 융자를 받으려면, 도시에 사는 사람은 재산이 3천 만 원을 넘으면 안 되고, 한 달 수입이 1백 만 원을 넘어도 신나는 조합에 참여할 수 없다. 농사짓는 사람은 가진 땅이 농부 1인당 평균 경작 면적인 3,000평보다 적어야 한다. ‘신나는 조합’의 강명순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대부분의 은행들은 대기업에는 수천 억 원씩 떼이면서도 서민들에게는 좀처럼 돈을 빌려주지 않으려 하지요. 하지만 신나는 조합에서는 돈 없고 배경 없는 빈털터리라는 사실을 잘 증명할수록 더 기쁘게 돈을 빌려주는 곳입니다.”

그라민 은행이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 방글라데시의 일반 은행들은 가난한 사람들, 특히 여성들을 차별해왔다. 당시 융자를 받은 여성의 비율은 1%도 안 됐다. 그라민 은행은 일반 은행들과는 반대로 융자 대상을 여성으로 제한하고 있다. ‘가난한 여성에게 융자를 주는 것’이 원칙이다. 현재 300백만 명이 넘는 그라민 은행의 회원 중 95%는 여성이다. 방글라데시의 문화와 종교적 특성을 감안할 때 여성에게 융자를 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라민 은행이 남성이 아닌 여성에게 융자를 주는 이유는 가난의 문제가 남성의 문제라기보다는 여성의 문제에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가정의 일상을 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기근이나 가난에 더욱 직접적으로 노출된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한 가정에서 식구들이 배를 곯아야 한다면, 대개는 그 가정의 주부인 여성이 먼저 밥을 굶는다. 대체로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기근이나 양식이 부족할 때 자식들을 굶기지 말아야 한다는 의지가 강한 것이다. 가난하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자식을 돌보는 여성의 경우 그 고통은 더욱 심하다. 그래서 만일 여성에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조금이라도 주어진다면, 여성은 남성보다도 더욱 투쟁적이 된다는 사실을 그라민 은행은 잘 알고 있다. 그라민 은행의 직원들은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가난한 여성들이 실제로 남성들보다도 가족의 기반을 닦는 데 훨씬 더 빠르게 적응하고 악착스럽다는 것을 체험했다. 또한 여성들은 자녀의 미래에 관심이 많으며, 일에서도 더 강한 인내심을 발휘한다. 융자 대상을 여성으로 제한하는 것에 대해 유누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난한 여성에게 조금이라도 돈이 생기면, 그 돈은 가장 먼저 자녀들을 위해서 쓰인다. 그 다음으론, 집안 살림에 쓰이는데, 이를테면 부엌용품을 산다거나, 지붕을 새로 얹는다거나, 가족의 편의를 위해 쓰는 식이다. (......) 경제발전의 궁극적인 목표가 삶의 질을 높이고, 가난을 줄이고, 안정된 일자리를 확보하고, 불평등을 줄이는 데 있다고 한다면, 이러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여성들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여성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핍박을 받고 고용 조건이 열악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의 상당 비율을 차지한다. 게다가 여성은 자녀들과 보다 가까운 위치에 있기 때문에, 여성이 우리 방글라데시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다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라민 은행은 ‘연대 보증 융자’ 방식을 취하고 있다. 혼자 오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대출해주지 않는다. 다섯 사람이 하나의 그룹을 만들어 와야 한다. 융자는 개인 명의로 주되, 책임은 그룹 공동으로 지는 방식이다. 돈을 빌리려는 사람은 혼자이면 안 되고, 자기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그룹을 지어야 하며 그룹 내 사람들은 사회적 경제적 여건이 유사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갖은 종류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하지만 5명이 그룹을 지어 뭉치면 보다 안정된 느낌을 갖는다. 가난한 사람은 혼자서는 계획도 잘 세우질 못하고, 실천력이 부족한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룹을 지어 행동할 때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도 받고 경쟁심도 생기게 때문에, 융자를 받게 되면 계획에 따라 행동하고 실천력도 강해진다. ‘신나는 조합’의 강명순 대표는 ‘1명은 외롭고, 둘이면 마음모아 도망가기 쉽고, 3명이면 한 사람이 소외되고, 4명이면 편이 갈려서 5명이 가장 알맞다’고 말한다. 그라민 은행은 융자를 원하는 사람들끼리 알아서 그룹을 만들 것을 적극 권한다. 왜냐면 적극적인 참여로 만들어진 그룹일수록 결속력과 책임감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룹 짓기는 많은 장점이 있지만, 실제로 그룹을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융자를 원하는 사람은 여러 사람을 직접 찾아가야 하고, 그 사람들에게 그라민 은행이 어떻게 운영되며 함께 융자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일이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가난한 여성 5명으로 그룹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융자를 받기 위한 자격 조건이 모두 갖춰진 것은 아니다. 다섯 명의 그룹 구성원들은 예외 없이 그라민 은행이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대한 교육을 받고 시험을 봐야 한다. 반드시 시험을 통과해야 융자를 받을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을 읽거나 쓸 줄 모르기 때문에 시험은 구두로 진행된다. 은행 직원들은 그룹 구성원들은 각각 따로 불러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진다. 한 명이라도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재시험을 봐야 한다. 다섯 명 모두가 시험을 통과해야만 융자를 받을 수 있다. 직원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가난 극복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고 자립 가능성을 세심하게 관찰한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로 그룹을 만들고 함께 공부하고 시험을 보고 떨어져서 다시 시험을 보는,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인내심과 결심이 약한 사람은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가게 된다. 또한 쉽게 절망하는 사람들도 인내심이 강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자극을 받고 높은 책임감과 실행력을 갖게 된다. 이런 점을 보면 그라민 은행의 연대 보증 방식은 일반 은행들의 그것과 매우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라민 은행은 어떤 그룹에 융자를 제공하기로 확정을 해도, 상당히 신중하게 접근한다. 우선 그룹의 한 사람에게 먼저 융자를 주고 난 다음에 다른 두 사람에게 융자를 준다. 그런 후 세 사람이 6주 동안 제대로 원금을 갚는지를 확인하고 나서 나머지 두 사람에게도 융자를 준다.

그라민 은행이 이 처럼 독특하면서도 철저한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는 ‘굳은 결심을 가진 사람들만이 돈을 빌릴 수 있게 하여, 그들에게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헤쳐 나가고 투쟁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라민 은행은 ‘담보’ 보다 ‘의지’가 상환 능력과 더 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융자를 원하는 사람은 은행에 자신의 의지와 결심을 확실히 보여주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 한 명이 그라민 은행에서 제공하는 소액 융자를 통해 가난을 딛고 일어서는 모범 사례를 보여주면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성공만큼 설득력이 강한 것은 없다.

● 일 년 간 매주 원금을 소액 상환하는 방식과 엄격한 상환원칙
방글라데시의 기존 은행들이나 제 2금융권은 개인에게 융자를 주고 원금을 일시에 돌려받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런 방식에서는 돈을 빌린 사람은 만기가 되면 한 번에 돈을 갚아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융자를 받은 사람은 대개 융자액을 늘려가면서 만기일을 가능한 미루게 되고, 결국에는 돈 갚는 것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게 된다. 이런 단점을 간파한 그라민 은행은 기존의 은행들과는 반대의 방식을 택했다. 그라민 은행에서 융자를 받는 사람은 ‘매주 조금씩 원금을 나누어’ 갚는다. 1주일 단위로 소액을 상환함으로써 원금 상황에 대한 부담감을 줄이는 것이다. 1주일 마다 소액 상환하는 방식의 또 다른 장점은 고객 관리가 용이하다는 점이다. 누가 돈을 갚고 누구는 돈을 갚지 않았는지 1주일 마다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에, 돈을 떼먹고 달아날 때까지 기다릴 것도 없고 경제적 여건이 나빠져 상환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는데 걸리는 시간도 짧다. 이 방식은 융자를 한 번도 받아 본적이 없는 대부분의 가난한 여성들에게 큰 부담 없이 스스로 원금을 갚아나가는 경험과 ‘나도 돈을 갚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장점도 갖고 있다.

그라민 은행의 ‘융자의 상환 기간은 1년’이다. 1년으로 못 박은 이유는 회계를 단순화시키고, 다양한 상환 기간에 수반되는 여러 절차와 서류 작업 등을 없애기 위해서다.

‘일 년 간 매주 원금 중 일부를 소액 상환하는 방식’은 융자를 받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다. 그러나 그라민 은행의 융자가 편한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라민 은행은 다른 어떤 은행보다도 엄격한 상환 원칙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그라민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린 사람은 자연재해나 개인적인 사고를 당한 경우라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원금을 반드시 상환해야 한다. 그라민 은행은 피치 못할 상황에 빠진 사람에게는 주당 상환금을 아주 낮춰서라도(예를 들면 0.1%) 상환은 반드시 하도록 한다. 이것은 아무도 어길 수 없는 원칙이다. 이런 원칙을 고수하는 이유는 돈을 빌린 사람의 독립심과 책임감을 높이고 중도에서 포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만약 어떤 마을에 홍수나 기근이 들어 곡식이나 가축이 피해를 입은 경우, 그라민 은행은 이미 융자를 받았던 사람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다시 융자를 준다. 이 경우에도 예전에 주었던 융자를 일부 탕감해주거나 없던 것으로 하는 경우가 없다. 장기 융자로 전환하여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해도 모두 갚도록 한다.

자연재해나 사고처럼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융자를 받은 사람은 적어도 50주 동안 매주 원금의 2% 이상을 상환해야 한다. 그라민 은행은 소액 상환의 특성상 몇 번 상환을 거르게 되면 서로 간에 신뢰가 깨지게 되고 나아가 습관적으로 상환을 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경계한다. 이에 대해 유누스는 이렇게 강조한다.

“심리적 관점으로 볼 때, 회원과의 관계에서 신뢰만큼 중요한 요인은 없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석 달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일주일 단위로 꾸준히 상환을 했다고 한다면, 그는 앞으로도 별 탈 없이 상환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왜냐면 그 사람은 이미 원금의 4분 1을 갚았고, 앞으로 4분의 3만 갚으면 되기 때문이다. 원금의 절반을 갚았을 경우, 이젠 절반 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 은행에서는) 일 년 동안 원금과 이자를 모두 갚도록 되어 있다. 이들은 매번 갚아야 하는 금액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때론 의식도 못하고 돈을 갚는다. 오히려 흔쾌한 마음으로 돈을 갚는 것이다.”


● 고객을 위해 고객에게 다가가기
무하마드 유누스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독창적인 은행 방식을 생각하셨죠? 원래 은행가도 아니잖습니까, 어떻게 하신 거죠?”라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우리는 다른 은행들이 어떻게 하나 보면서, 정반대로 했습니다.”

일반 은행들은 보증과 담보를 요구하고, 돈을 빌리는 사람에게 상환 능력이 있는지를 분석하는데 온 신경을 쏟는다. 행여 돈을 갚지 못하게 되면 채무자는 도망 다니거나 죄인이 되어 법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된다. 이에 반해 그라민 은행은 원금을 상환 받기 위해 사법체계에 호소하거나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하는 경우가 없다. 이 은행은 ‘우리는 모든 일을 우리 스스로 해결 한다’는 원칙을 정했고 이것을 지킨다.

유누스와 직원들은 그라민 은행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회원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법에 기댈 경우,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신뢰는 날아간다. 이런 이유로 돈을 빌려주는 사람과 돈을 빌리는 사람 사이에 사법적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류도 필요하지 않다. 유누스는 ‘우리는 다만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뿐이며, 우리 은행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오로지 사람들과의 관계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은 악화되기 쉽기 때문에 법이나 서류로 묶는다고 상환비율을 높일 수는 없다는 것이 그라민 은행의 생각이다. 그라민 은행은 ‘사람은 정직하다’는 전제조건에서 출발한다. 서로 신뢰함으로써 돕고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게 되면, 원금 상환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고 믿는다. 기존의 은행 시스템이 불신에 기초한다면 그라민 은행의 원칙은 신뢰를 바탕으로 삼고 있다. 그라민 은행의 이러한 신념과 원칙은 98%가 넘는 원금 상환율로 보답 받고 있다.

기존의 은행들은 사람들이 자기네 은행으로 오도록 만든다. 하지만 그라민 은행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믿었다. 가난한 여성은 대개 문맹인 경우가 많고, 이들은 은행에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담을 느낀다. 가난한 일상과 은행은 거리가 먼 것이다. 그라민 은행은 설립 시부터 은행이 사람들 쪽으로 간다는 원칙에서 출발했다. 조브라 마을의 주민들에게 유누스가 돈을 빌려준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라민 은행의 어떤 지점을 방문해도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는 광경은 볼 수가 없다. 또한 은행의 직원들도 몇 명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직원들이 사람들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은행 초창기에는 ‘직원이 사무실에 있는 것은 그라민 은행의 내규에 어긋나는 일이다’라는 문구를 의무적으로 붙여 놓기까지 했다고 한다. 유누스는 직원들에게 ‘여러분은 사무실에 앉아 있는 시간 때문이 아니라 밖에서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 때문에 봉급을 받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일반 은행들은 융자를 주기 전에는 돈을 빌리는 사람에게 반드시 보증을 요구한다. 하지만 일단 융자를 주고 난 다음에는 융자를 받은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다가 만기가 되고 원금 상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그제야 융자를 준 사람에게 다시 관심을 쏟는다. 그라민 은행은 이와는 반대로 한다. 일반 은행은 ‘돈’을 보고 ‘결과’를 관리하는데 집중하지만 그라민 은행은 ‘사람’을 보고 ‘과정’을 관리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그라민 은행의 직원들은 융자를 준 사람을 매주와 매월 한 차례씩 방문해서 재정 상태가 어떠한지, 융자한 돈이 본래의 목적대로 쓰여 지고 있는지 확인한다. 이런 식으로 2만 명이 넘는 직원들이 매주 300만 가량의 사람들의 집을 방문하고 있다.(아래 첨부한 ‘그라민 은행 직원의 하루 일과’ 참조)


그라민 은행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무하마드 유누스와 그라민 은행의 사람들은 그라민 은행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에서 언젠가는 ‘예전에 가난했던 사람들의 은행’으로 기억되길 바라고 있다. ‘가난 없는 세상을 이룩하는 것’이 그라민 은행의 꿈이기 때문이다.


<그라민 은행 직원의 하루 일과>

- 6시: 기상하여 세수 및 아침
- 7시: 서류와 가방을 챙겨 자전거를 타고 지점으로 향한다.
- 7시 30분: 융자를 받은 40명의 사람들이 직원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자기네가 직접 만든 대나무 간이 시설에 앉아서 직원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서로 그룹을 지어 여덟 줄로 앉아 있는데, 각 그룹의 대표는 자기 자신을 포함한 그룹 구성원들의 통장을 모아서 가지고 있다. 미팅이 있기 전에 간단한 체조 시간을 갖는다. 직원은 각 그룹으로부터 상환금과 통장을 넘겨받는다.
- 9시 30분: 직원은 자전거를 타고 두 번째 미팅을 위해 다른 ‘센터’(그라민 은행에서는 그룹 몇 개를 묶어 센터라고 부른다)로 향한다. 주중에 그 직원은 열 개의 센터를 관리해야 한다. 그는 자기 책임 하에 있는 400명의 회원을 만나야 하며, 여러 명목으로 제공된 융자(일반 융자, 계절 융자, 주택 융자)에 대한 상황금과 회원들이 맡기는 예금을 받아야 한다. 직원은 두 번째로 들른 센터를 떠나기 전에 장부를 대조하다가 몇 타가가 남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자세히 검토해 본 결과, 한 회원이 다음 주에 상환해야 할 금액을 미리 상환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 11시: 직원은 회원들을 방문하고 그들에게 조언을 한다. 이 방문을 통해 회원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한다. 이는 매우 중요한 업무 가운데 하나인데, 직원이 교육자로서의 재능을 구체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기획이기도 하다.
- 12시: 지점으로 돌아온 직원은 여러 서류들을 정리하고 회계 장부에 기록을 한다. 지점장이 일단 일을 마치면 이 직원도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는 회계 검토를 철저하게 해서 단 1타카의 오차도 없도록 해야 한다.
- 13시 30분 ~ 14시: 점심 및 동료들과의 티타임
- 14시: 오전에 수금된 돈은 오후에 새로운 융자금으로 지급된다. 융자를 줄 때 직원들은 지점장을 보좌한다.
- 15시: 이 직원과 다른 동료들은 새로 지급된 융자에 관한 내용을 장부에 기록한다.
- 16시 30분: 차를 마시면서 동료들과 환담을 나눈다.
- 17시 ~ 18시 30분: 융자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점을 방문하거나, 아동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구상한다.
- 19시: 남아 있는 서류 정리를 마치고 하루 일과를 마감한다.



● 참고 자료:
*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Vers un monde sans pauvrete, 1997), 무하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 세상사람들의 책
* 경향신문 : 김윤숙 기자, 2004년 3월 22일자 기사
- 기사 제목: ‘신나는 조합’ 강명순씨 ‘자활대출’




유누스 박사

신용은 인간 기본권 … 적선은 거지 근성만 키워”
경제학 교수서 ‘貧者의 대부’로 … 살해협박 받기도

▲ 유누스 총재의 사무실 벽에는1995년 방글라데시를 방문한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부인 힐러리 여사와 딸 첼시(사진 오른쪽 끝)가 함께 찍은 기념 사진이 전시돼 있다. 유누스 총재는“클린턴 가족도 그라민 프로젝트의 열성적인 후원자들”이라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Dacca)의 거리를 지나는 것은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부자들의 저택과 외국 공관, 상사 주재원들 집이 모여 있는 굴샨(Gulshan) 거리를 빠져나오면 사람과 인력거와 자동차가 한데 뒤섞여 흐르는 허름한 도시와 만난다.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아스팔트 복사열을 피해 그늘에 숨었던 아이들은 외국인만 보면 튀어나와 조건반사처럼 ‘머니(Money)!’를 외친다. 부러진 발목을 덜렁덜렁 흔들며 거리를 걷는 소년. 벌거벗은 아이를 안고 다른 손으로 자동차 창문을 두드리며 구걸하는 임산부의 간절한 눈길은 이방인을 힘들게 한다. 난처함을 피하기 위해 영자지 조간신문을 펼치자 ‘지참금 때문에 아내의 몸에 불을 지르고 두 아들을 죽인 비정한 가장’이란 제목의 기사가 다시 마음을 어지럽힌다. 가난이 사람을 배반하는 사연들로 가득 찬 도시다.
그 비정의 거리를 지나 찾아간 곳은 가난한 이들에게 담보 없이 돈을 빌려주는 그라민은행(Grameen Bank). 찌는 듯한 더위 속에 에어컨도 들여놓지 않은 총재실에서 만난 은행 설립자 무하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63) 박사는 “신용은 인간이 가진 기본권”이라는 믿음 아래 지난 30년간 소액 대출(Micro Credit) 사업을 해온 빈자(貧者)의 대부다. 그는 극동의 기자가 거리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오는 길에 불쌍한 사람들 많이 봤을 겁니다. 돈을 주고 싶었죠? 하지만 적선은 그들의 자립을 영원히 불가능하게 하는 아주 나쁜 행동입니다.”
“적선은 거지 근성만 키운다”고 냉정하게 말하는 그는 1억4000만 방글라데시 국민 가운데 기아 선상에서 헤매는 240여만명에게 갱생의 종자돈을 빌려주며 자활의 길을 안내한 공로로 막사이사이상과 세계식량상을 수상했다. 1995년에는 아시아위크지가 선정한 ‘위대한 아시아인 20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뽑히기도 했다.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이자 빈곤해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그는 방글라데시 남부 해안도시 치타공에서 유복한 보석가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사회 지도층의 이너서클(Inner Circle) 속에서 자라 풀브라이트장학금을 받아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그는 유학 중 러시아 출신의 유학생과 결혼해 딸을 두었고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1972년 “서구의 합리주의 학문으로 조국의 가난을 해결하겠다”는 기대를 품고 귀국했다.
“치타공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던 1974년 방글라데시에 엄청난 기근이 덮쳤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는 것을 보며 문득 내가 가르치는 경제학에 회의가 생겼습니다. 강의실 칠판과 교과서에 쓰인 숫자에 불과했던 가난은 거리에서 수많은 어머니와 아기들이 부둥켜안고 죽어가는 생생한 비극으로 뼈저리게 다가왔습니다.”
그는 본격적인 가난퇴치 운동을 시작했다. 농촌에 만연한 고리대금의 고리를 끊기 위해 융자를 알선하려 했지만 은행들은 모두 거절했다. ‘담보능력이 없는 이에게 돈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서양 경제학에는 마음이 없다”고 했다. 가난한 이들의 자존심과 가난극복 의지를 고려하지 않는 서구식 경제 패러다임을 따르기 때문에 은행들은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는 모순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1976년 조브라마을 사람들 42명에게 27달러의 주머니돈을 나눠 빌려 주었다. 그냥 줄 수도 있었지만 빌려주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가난구제의 이상을 펴려면 많은 돈이 필요했다. 대학 근처의 은행을 찾아간 그는 자기 신용으로 1만 타카(약 240달러)를 빌려 ‘그라민(‘마을’이란 뜻)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본격적인 소액대출 실험에 들어갔다.
“실험은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는 암마잔이란 여자를 예로 들었다. 가난으로 남편과 9명의 아이를 잃은 그녀는 유누스 박사에게서 돈을 빌려 대나무 바구니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여유가 생기자 암송아지를 샀고 송아지가 자라 새끼를 낳자 송아지를 팔고 우유도 짰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던 절대빈곤에서 탈출한 그녀는 원금도 훌륭히 상환했다.
그라민 은행의 대출금 95%가 여성에게 할당된다. 가난과 기근은 남자보다 여자와 아이들에게 더 치명적이기 때문이며, 극한 상황에서 아이들을 끝까지 지키는 이도 여성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로 인해 유누스 총재는 보수적이고 남성중심인 농촌과 이슬람사회로부터 서양악귀로 내몰렸고 살해협박에 시달리며 대출사업을 하는 이중고를 겪었다. 정치인들조차 “왜 여자에게 돈을 빌려주느냐”는 어이없는 공개 항의서를 보내기까지 했다. 농촌 여성들은 외간 남자와 대화도 하지 않는다. 그는 “담장을 사이에 두고 담장 안의 보이지 않는 여자를 향해 ‘돈을 빌려가라’고 설득하다 허탕치고 돌아오기를 수없이 반복했다”고 회상했다.
돈을 빌리는 사람들은 담보 제공을 면제받는 대신 마을 단위 자활 교육에 참가해야 한다. 그는 “교육 내용에는 자기 이름 쓰는 법도 포함돼 있다”며 “문맹을 벗어나도록 자극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름 쓰는 법까지 가르치는 것은 그라민 프로젝트가 가난추방 운동이자 여성해방 운동이고 궁극적으로는 사회개혁 운동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프로젝트를 전국단위로 확산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가 대출자금 확보를 위해 접촉한 은행장들은 “안면장사 하는 마을단위라면 몰라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무담보로 돈을 줄 수는 없다”며 여전히 반대했다. 더 큰 지역 단위 실험을 성공하면 자금을 대준다는 말에 당시 마르크스주의 무장 게릴라들이 들끓던 탕가일에 들어가 19개의 그라민 프로젝트 지점을 개설하는 목숨을 건 모험을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대학교수직을 버렸고, 미국에 돌아가 아이를 키우자는 아내와는 “조국의 빈민을 버릴 수 없다”며 이혼하는 아픔도 겪었다. “엄마 손에 자란 딸이 훌륭히 자라 줄리아드 음대를 졸업했다더라”고 회상할 때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1983년 방글라데시 정부는 탕가일에서 90% 이상의 원금 회수율을 기록하며 빈민 대부업을 성공시킨 그라민 프로젝트를 인정하고 정식은행 인가를 내 줬다.
그라민 은행의 영업보고서는 특이하다. ‘누구에게 돈을 빌려줬고 얼마나 회수했고 이익이 얼마다’라고 쓰는 다른 은행과 달리, 대부자가 그 돈으로 어떤 일을 시작해 어떻게 자활에 성공했는지를 기록한다. 유누스 총재는 2001년도 영업보고서 첫 장을 보여줬다. 사람들이 자전거와 연결된 제분기에 곡류를 넣어 빻는 사진이 실려 있다. “사람이 자긍심을 갖는 데 큰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자전거 살 돈과 제분기 하나 살 돈만 빌려줘도 이렇게 ‘이동식 제분기’를 만들어 먹고살 길을 찾습니다. 그들은 신이 나서 돈을 갚으러 옵니다. 얼굴에는 ‘나도 사람구실 한다’는 자랑스러운 웃음이 가득합니다.” 그는 “그라민 프로젝트가 방글라데시뿐 아니라 온 세상의 절대빈곤을 몰아낼 날을 보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라민 프로젝트는 현재 세계 6대주 60여개 나라에 퍼져 유누스 총재의 이상을 실현해 가고 있다. 한국에서는 부스러기사랑나눔회가 ‘신나는 조합’이라는 이름의 그라민은행 한국지부를 운영하고 있다.
(다카(방글라데시)=김태훈기자 scoop87@chosun.com )



그라민 은행
83년 설립…無담보로 240만명에 30억弗 대출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담보로 약 150달러 내외의 적은 돈을 빌려주는 소액 대출은행. 본부는 다카 미르푸르(Mirpur) 2가에 있으며 방글라데시 전역에 1100여개의 지점을 두고 있다. 240여만명에게 1730억4100만 타카(약 29억7000만달러)를 대출해줬다. 농촌지역을 주무대로 극빈자에게 대출사업을 하고 있지만, 원금을 떼이지 않고 회수한 비율은 무려 98.91%(2003년 3월 기준). 유누스 총재는 “부패한 지도층들이 은행 돈을 숱하게 떼먹는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적은 돈도 성실하게 갚는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그라민 폰(이동전화 대여업), 주택자금 및 학자금 융자 사업, 그라민 트러스트(해외 지점 확충사업)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유누스 총재는 “그라민 은행은 돈을 빌린 사람들이 은행의 회원이 되므로 사업수익이 회원의 이익으로 돌아가는 조합 운영방식을 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본문내용-namoo0419님 블로그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신문의 1면을 장식한 그.
나는 그랬다.
그가 신문 1면을 장식하고 나서야만 그를 찾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였다.
무담보 소액대출의 성공.
그들은 가난하지만 정직하다.
어쩌면 가난했기에 더 정직할 수 있었단 생각마저 든다.
나를 믿는 사람에게 등 돌리지 않고
대가없이 사람을 믿어주는 것.
이상적인 이야기이다.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이야기.
현재 52개국 국가에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방글라데시의 그것만큼 성공을 거뒀을까? 라는 의구심이
먼저 드는건..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스스로 안타깝다.


"빈민들은 은행으로부터 대출 받을 자격이 안됩니다. 그 자격이란 무엇입니까? 자격이 없다는 것은 돈을 빌릴 만큼 충분한 돈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금융기관들이 돈이 많을수록 더 많이 빌려준다는 원칙 때문인데 이건 전적으로 잘못된 원칙입니다. 진정한 원칙은 돈 없는 사람이 발전할 수 있도록 돈이 적을수록, 더 잘 빌려 준다가 되어야 합니다."
무하마드 유누스



Sunny Funny

Dreamy의 선별된 재밌는 이야기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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