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Clouds

New Postings

  • 비극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을 알지 못하는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아는 게 적은 사람일수록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고 믿는다.
    - 조이스 캐리
2005.11.18 08:39

식민지의 국어시간

조회 수 5062 추천 수 109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식민지의 국어시간
.                             - 문병란

내가 아홉 살이었을 때
20리를 걸어서 다니던 소학교
나는 국어 시간에
우리말 아닌 일본말,
우리 조상이 아닌 천황을 배웠다.

신사참배를 가던 날
신작로 위에 무슨 바람이 불었던가,
일본말을 배워야 출세한다고
일본놈에게 붙어야 잘 산다고
누가 내 귀에 속삭였던가.

조상도 조국도 몰랐던 우리,
말도 글도 성까지도 죄다 빼앗겼던 우리,
히노마루 앞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말 앞에서
조센징의 새끼는 항상 기타나이가 되었다.
어쩌다 조선말을 쓴 날
호되게 뺨을 맞은
나는 더러운 조센징,
뺨을 때린 하야시 센세이는
왜 나더러 일본놈이 되라고 했을까.

다시 찾은 국어 시간,
그날의 억울한 눈물은 마르지 않았는데
다시 나는 영어를 배웠다
혀가 꼬부라지고 헛김이 새는 나의 발음
영어를 배워야 출세한다고
누가 내 귀에 속삭였던가.

스물다섯 살이었을 때
나는 국어 선생이 되었다.
세계에서 제일 간다는 한글,
배우기 쉽고 쓰기 쉽다는 좋은 글,
나는 배고픈 언문 선생이 되었다.
지금은 하야시 센세이도 없고
뺨 맞은 조센징 새끼의 눈물도 없는데
윤동주를 외우며 이육사를 외우며

나는 또 무엇을 슬퍼해야 하는가.



어릴적 알아들을 수 없었던 일본말,
그날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는데
다시 내 곁에 앉아 있는 일본어선생,
내 곁에 뽐내고 앉아 있는 영어선생,
어찌하여 나는 좀 부끄러워야 하는가.


누군가 영어를 배워야 출세한다고
내 귀에 가만히 속삭이는데
까아만 칠판에 써놓은 윤동주의 서시,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글자마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오 슬픈 국어시간이여.

Sunny Funny

Dreamy의 선별된 재밌는 이야기들.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717 부모님 살아계실 때 꼭 해드려야 할 45가지 Dreamy 2006.07.09 5093 111
716 격동의 80년대 file Dreamy 2012.10.13 5094 0
715 먼지아트의 세계 file Dreamy 2006.07.28 5096 117
714 이글읽고 눈물흘렷다.... file Dreamy 2007.07.24 5096 116
713 누구나 한번 들어본 용팔이 어법 Dreamy 2007.10.01 5098 51
712 빈민들을 위한 은행, 그라민 은행. 읽어보세요. file Dreamy 2006.10.15 5102 2
711 샴푸없이 살 수 있나요? file Dreamy 2006.08.07 5112 97
710 허경영전 Dreamy 2008.01.07 5112 32
709 목사가 목사에게 - 문국현 홈피에 뜬 글 file Dreamy 2007.10.07 5113 59
708 세계속의 우리문화 file Dreamy 2005.11.28 5114 85
707 순돌이 file Dreamy 2005.12.12 5114 128
706 우리나라 여권女權이 이렇게 대단한줄은 미쳐 몰랐다. Dreamy 2006.07.02 5120 101
705 비밀을 말해 봅시다. Dreamy 2006.04.23 5127 102
704 심봉사 쌀굳었네 file Dreamy 2006.10.13 5132 122
703 사랑하고있다는 증거 Dreamy 2012.07.01 5132 0
Board Pagination ‹ Prev 1 ...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 59 Next ›
/ 59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