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Postings
New Comment
2005.08.06 21:08
바다에 버리고 오다 [기형도]
조회 수 4863 댓글 0
나는 기형도의 시가 좋다.
우연히 '기형도 전집'을 읽게 되었었는데, 아무생각 없이 책을 들었지만 그때 받았던 신선한 느낌은 잊혀지질 않는다.
언어에 대한 감수성이나, 화려하면서도 유치하지 않은 표현법은 정말 뛰어난 것 같다. 또한 짧고 화려하게 작품활동을 하다가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 작가라면 충분한 매력이 있는 것일테니까.
그의 시 한편.
바다에 버리고 오다 [기형도]
1.
도망치듯 바다로 달렸다
그 바다, 구석진 바위에 앉아
울고 싶어서 술을 마셨다
그냥은 울기가 민망해서 술기운을 빌려 운다
울 수 있을 만큼만 술을 마신다.
그러면 바다는 내 엄살이 징그럽다고 덤벼들었다
노을이 질 무렵, 파도가 한 웅큼의 피를 쏟아내었다
바다는 새벽을 잉태하기 위하여 날마다 하혈한다
일상의 저음부를 두드리던 가벼운 고통도
내 존재를 넘어뜨릴 듯 버거운 것이었고
한 옥타브만 올라가도 금새 삐그덕거리는 우리의 화음은
합의되지 못한 쓸쓸함,
그래 가끔은 타협할 필요도 없이 해결 되기도 했지만
나와 함께 아파 할 아무도 없다면 어떠랴
징징대는 감정을 달래느라 늘 신경은 하이소프라노로 울고
끝내는 당도하지 못할 너라는 낯선 항구,
파도가 쓸고 가버린 것은 빈 소주병만이 아니었을까
시작도 없는 끝, 시작만 있는 끝
늘 함부로 끝나버리기 일쑤인 기약없는 시작이었음을
2.
바다가 잠든 나를 두드렸다
이미 어두워진, 수초내음만이 살아있는 바다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무리 눈을 문질러도
보이지 않아서 볼 수가 없다
보여도 보이지 않는 척 하기로 한다
바이올린의 비명이 나를 대신하는
oblivion, 바다가 슬픔을 풀어놓는 동안
잃어버린 기억 한자락 끼어든다
망각은 내가 너를 견디는 방식
살아가는 것이 무릎 관절염 같은 시린 악몽일지라도
오늘, 단 한편의 아픈 꿈을 허락하기로 한다
오늘만 취하기로 한다
수평선 너머로 밀려가는 아득한 기억상실을 위하여
3
바다는 출산을 위하여 끙 한번 신음한다
망망대해에 부유하는 사연들과 같이 아파했던 까닭으로
바다는 새벽을 낳을 무렵, 푸르고도 투명하게 멍들어 있다
첨부파일 '1' |
---|
CoLoR (BLOG)
유치찬란한 대화 모음집
-
오후 4시의 희망 (기형도)
金은 블라인드를 내린다, 무엇인가 생각해야 한다, 나는 침묵이 두렵다 침묵은 그러나 얼마간 믿음직한 수표인가 내 나이를 지나간 사람들이 내게 그걸 가르쳤다. 김은 주저앉는다, 어쩔 수 없이 이곳에 한 번 꽂히면 어떤 건물도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Date2005.11.11 ByDreamy Views4520 -
감 (허영자)
이 맑은 가을 햇살 속에선 누구도 어쩔 수 없다 그냥 나이 먹고 철이 들 수밖에는 젊은 날 떫고 비리던 내 피도 저 붉은 단감으로 익을 수밖에는 ...... ========================================= 늦은 가을, 만추입니다. 이 가을도 지나가면 또 한번 나이 ...Date2005.11.09 ByDreamy Views3717 -
일주일의 의미
당신에게 일주일은 무엇입니까. 사랑을 하기에는 너무 짧고, 연애를 하기에는 너무 긴 시간. 길을 떠나기에는 충분하지만, 다시 돌아오기는 부족한 시간. 일을 시작하기 쉽지만, 그 일을 끝내기는 어려운 시간... ========================================= ...Date2005.10.21 ByDreamy Views3418 -
바다에 버리고 오다 [기형도]
나는 기형도의 시가 좋다. 우연히 '기형도 전집'을 읽게 되었었는데, 아무생각 없이 책을 들었지만 그때 받았던 신선한 느낌은 잊혀지질 않는다. 언어에 대한 감수성이나, 화려하면서도 유치하지 않은 표현법은 정말 뛰어난 것 같다. 또한 짧고 화려하게 작품...Date2005.08.06 ByDreamy Views4863 -
사랑에 실패한 이를 위로하는 시
사랑에 실패한 이를 위로하는 시 . 장석주 오늘보다 내일이 나으리라 내일보다 모레가 더 나으리라 오늘 사랑에 실패했다면 내일엔 그 상처가 아물리라 모레가 되면 새로운 사랑이 생기리라 그러므로 죽지 마라 사랑 때문이라면 결코 죽지 마라Date2005.03.31 ByDreamy Views3958 -
산은 옛 산이로되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물 아니로다 주야晝夜에 흐르니 옛물이 있을소냐 인걸人傑도 물과 같아서 가고 아니 오노매라 . - 황진이 시조 - ; 서경덕을 그리며 썼다고 전해짐.Date2005.02.08 ByDreamy Views4262 -
사랑의 침묵
너에게도 세월이 지나갔구나 꽃들은 어둠 속에 소리 없이 지고 내 사랑하는 것들은 말이 없고 내 사랑하는 여자도 말이 없고 나는 너무 많은 사랑을 하다가 쓰러져 흰 눈 쓴 겨울 사내로 말이 없고 깊은 강물은 소리없이 흐르듯 진실로 사랑하는 가슴은 너무 ...Date2005.01.08 ByDreamy Views3575 -
외워두세요(white)
모두 다 받았죠. 그냥 있어준 것 만으로 어디에 있어도 느끼는 햇살 같았어요. 감사할 뿐이죠. 마지막 이예요. 거짓말 하기는 싫어요. 슬프게도 너무 잘 알죠. 같은 공간에선 같이 살 순 없어. 서로의 걱정은 하지 마요. 무슨 말인지 알겠죠? 사는 동안에는 ...Date2004.12.27 ByDreamy Views3443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