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Clouds

New Postings

  • 한 가지 뜻을 가지고 그 길을 걸으라! 잘못도 있으리라. 그러나 다시 일어나서 앞으로 가라!
    - 카렐 프라게르

2008.01.26 11:26

식민지의 국어시간

조회 수 9221 댓글 0
식민지의 국어시간
.             - 문병란


내가 아홉 살이었을 때
20리를 걸어서 다니던 소학교
나는 국어시간에
우리말 아닌 일본말,
우리 조상이 아닌 천황을 배웠다.


신사참배를 가던 날
신작로 위에 무슨 바람이 불었던가,
일본말을 배워야 출세한다고
일본놈에게 붙어야 잘 산다고
누가 내 귀에 속삭였던가.


조상도 조국도 몰랐던 우리,
말도 글도 성까지도 죄다 빼앗겼던 우리,
히노마루 앞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말 앞에서
조센징의 새끼는 항상 가타나이가 되었다.


어쩌다 조선말을 쓴 날
호되게 뺨을 맞은
나는 더러운 조센징,
뺨을 때린 하야시 센세이는
왜 나더러 일본놈이 되라고 했을까.


다시 찾은 국어시간,
그날의 억울한 눈물은 마르지 않았는데
다시 나는 영어를 배웠다.
혀가 꼬부라지고 헛김이 새는 나의 발음
영어를 배워야 출세한다고
누가 내귀에 속삭였던가.


스물다섯 살이었을 때
나는 국어선생이 되었다.
세계에서 제일간다는 한글,
배우기쉽고 쓰기 쉽다는 좋은 글,
나는 배고픈 언문선생이 되었다.


지금은 하야시 센세이도 없고
뺨 맞은 조센징 새끼의 눈물도 없는데
윤동주를 외우며 이육사를 외우며
나는 또 무엇을 슬퍼해야 하는가.


어릴 적 알아들을 수 없었던 일본말,
그날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는데
다시 내 곁에 않아 있는 일본어 선생,
내 곁에 뽐내고 않아 있는 영어선생,
어찌하여 나는 좀 부끄러워야 하는가.


누군가 영어를 배워야 출세한다고
내 귀에 가만히 속삭이는데
까아만 칠판에
서놓은
윤동주의 서시,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글자마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오 슬픈 국어시간이여.

------------------------------------------------

그래... 영어로 수업 잘 해봐라 이것들아.

[ 관련 글 ]
TAG •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235 지난 여름 청년 창작성가 경연대회에 도전했었지요 2010.12.18 6736
234 이해가 안된다. 2011.09.06 6759
233 아이스링크 file 2005.08.07 6763
232 20세기 세계에서 일어난 황당한 일들 2003.01.03 6768
231 출장 나왔습니다. 3년만이네요. file 2011.08.02 6800
230 메모리 카드를 하나 샀습니다~ file 2005.07.14 6817
229 영화 'The RITE' 중에서 file 2011.09.18 6817
228 언젠가 썼던 글을 뒤적이다가. 2011.09.29 6823
227 자연재해 종합 선물 세트 file 2011.08.28 6849
226 I think... file 2004.10.06 6890
225 익살꾼 - 아이작 아시모프. file 2007.03.07 6962
224 용기를 내요. . . . 1 2003.01.06 6966
223 내가 바라는 이번 총선 국회의석 나눠먹기 2004.04.16 7024
222 같은 내용인데 이렇게 다를쏘냐.. (동아와 한겨레) file 2003.01.02 7065
221 골프 file 2004.12.11 7067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 21 Next ›
/ 21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