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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 명을 살리기 위해 한명을 죽인다면, 그것은 열 명의 살인자를 만드는 일이지.
    - 이영도, 눈물을 마시는 새 中

2018.10.02 15:06

허공 虛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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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 虛空

털썩.
그의 엉덩이는 버스 출발에 밀려
반쯤 빈 쌀자루 마냥 힘없이 의자에 꽂혔다.
나무 젓가락 같던 의지도 더 견디지 못하고 툭 부러졌다.
지친 버스가 어둠저녁 과거를 밀어내며 비틀대며 달려갔다.
...
그는 그대로 지난 하루를 보내준다.
악착같이 버텨왔던 도시생활이 배기가스처럼 매케하게 뿜어진다.

처음 도시는 색채 없이 그를 반겼었다.
거울 속엔 그가 흐린 데생으로 눈을 맞춘다.
언젠가부터 거울을 볼때 그는 자신을 정확히 분별해 내기가 어려웠다.
지우개질 한듯 몸 주변이 희미하게 번져 있다.
홀연히-
거울 속인지 현실인지 희미하다.
괜찮아 지겠지. 별일 아냐.
그는 무심히 허공에 혼잣말을 던졌다.

속쓰림은 오랜 친구처럼 그를 찾아온다.
허기일까 속쓰림일까
위장약 같이 진득한 망각을 습관처럼 털어넣고
후욱-
회색 숨을 내쉰다.
내쉰 숨에 또 다른 하루가 섞여 나온다.
내뱉은 하루는 오늘과 똑같은 모양으로 12시 시계바늘 끝에 날아가 걸렸다.
그는 저 하루가 어제인지 오늘인지도 희미하다.

꿈을 꾼다.
그의 꿈인데 그는 없다.
배경으로 가득찬 세상
모두가 배경이 되는 정체성의 지우개질.

분명 그는 거기 있었다.
그가
그였는지 배경이었는지, 꽃인지 바람인지, 삶인지 외로움인지
희미하게 확실하지 않다.

2012. 4. 19
2016. 1. 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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