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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속담


취미
2016.05.10 09:41

카라얀과 베르디 / 레퀴엠

조회 수 1801 추천 수 0 댓글 0

출처 : http://sound.or.kr/bbs/view.php?id=music1&page=7&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desc&no=152&PHPSESSID=895b2c0cb86e52a16b85094690af1de7


독창 / 레온타인 프라이스(소)휘오렌자 코소토(메), 루치아노 파바로티(테)니

콜라이 갸로프(베)
지휘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라 스칼라 가극장 합창단,관현악단
제작 / 도위치 그라모폰(UNITEL)1967년
레코드 제원 / CD VIDEO(LD) ADD,STEREO,84분 45초
레코드 번호 / WOOZ 24050
녹음 / 밀라노 스칼라 가극장 1967년 1월


카라얀은 자신의 예술을 널리 알리는 방법을 찾는데 있어서 늘 미래 지향적인 견해를 갖고 그것을 실천에 옮겼다. 그는 20세기의 과학기술인 음향에 자신의 기록을 남기는데 특히 의욕을 갖고 새로운 기술에 관한 정보와 미디어의 활용 에 반생을 바쳤다. 그가 {오케스트라의 제왕}으로서 오랫동안 군림할 수 있었 던 것도 이러한 미디어의 활용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카라얀의 최초의 녹음은 도이치 그라마폰에서 행한 모차르트의 '마술 피리'서 곡이다(1938년). 당시 아헨 오케스트라의 총감독이었던 29세의 카라얀은 처음 으로 베를린·필을 지휘하여 국립 가극장에서 베토벤의 '휘델리오'와 바그너 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로 데뷔를 장식하였다. 그것은 일종의 기적의 탄생이었 다. 그만큼 커다란 성공을 거둔 것이다.


카라얀이 영상 미디어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 잘츠부르크 음악제가 열리는 축제대극장에서 상연된 '장미의 기사'를 영화화했을 때 였다. 이 영화 를 통해서 그는 광범위한 메스 미디어의 활용이 보다 많은 청중들에게 연주를 들려주는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과 자기를 알리는 가장 뛰어난 수단이라는 사 실에 새삼 눈 뜨게된다. 이 무렵 그는 '情婦 마농'(1948)과 '공포의 報酬'(1952) 를 통해서 예리한 영상 감각을 보여준 프랑스의 영화감독 앙리 죠르쥬 크루조 를 만나 공동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된다. 슈만의 교향곡 제 4번, 모차르트의 가장조 K.219(바이얼린/유디 메뉴인)<1966년, 빈 교향악단>, 드보르작의 '신 세계 교향곡',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1966년, 베를린·필), 모차르트의 '대관 식 미사'(1967년, 로마 방송 향)등을 영화로 만들었고, 이어서 베르디의 레퀴엠 은 1967년에 밀라노에서 촬영하였다. 이로써 카라얀과 크루조는 모두 6편의 음 악영화를 제작하여 이 분야에서 첨단의 대기록을 세웠다.


카라얀과 스칼라 가극장의 관계는 각별한 것이다. 1945년 5월, 독일의 항복이 있기 직전 카라얀은 베를린을 탈출하여 이곳으로 피신하게 된다. 그런 뒤 극장 의 실권자인 <데 사파타>의 신임을 얻게되고 이런 인연으로 1948년엔 독일 오 페라 부문의 총감독의 자리를 얻게되어 매 시즌 지휘대에 오른다. 그가 후일 빈(WIEN)국립 가극장의 음악감독(1957-1964)으로 재임할 수 있었던 것도 스 칼라와의 협력 관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세간의 평이다. 뿐만 아니라 잘츠부르크(1956)와 베를린·필(1957)등 문자 그대로 유럽 악단의 주요 포스트 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도 스칼라에서 독일 오페라는 물론 이탈리아 오페라에 서도 정확한 지휘를 하여 이탈리아인들의 신뢰를 얻었던 사실이 커다란 후광 으로서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이탈리아인에게 비쳐진 카라얀의 인상은 가히 하나의 경이로운 {사건}이었고 (오스트리아 인이 이탈리아 오페라를 그토록 정확하게 지휘한다는 것이 그들 에겐 일종의 기적이었다) 그것이 전폭적인 지지와 후원의 힘으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1967년 1월 16일, 금세기 최대의 지휘자인 아르트로 토스카니니 死後 10주기 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추모 연주회가 카라얀의 지휘로 스칼라 가극장에 서 열렸고 여기에서 베르디의 레퀴엠이 연주되었다. 그날 밤의 스칼라 가극장 은 입추의 여지가 없을 만큼 많은 청중들이 몰려들었다. 그날이 마침 스칼라 의 시즌을 여는 첫 날이어서 모두들 상기된 표정임이 역력했다. 토스카니니는 1950년 6월, 이 극장을 떠나는 그의 마지막 지휘를 했는데 그때의 작품도 베르 디의 레퀴엠이었다. "카라얀의 연주는 토스카니니의 해석과 동일한 정신적 풍 토에 입각한 것이었다. 진실로 곡의 생명을 전한 연주였다" 이 연주를 언급한 {디 프렛세}紙는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안개가 유난히 짙었던 그날 밤, 카라얀은 마지막 음표의 울림이 끝나자 손을 조용히 내렸다. 연주홀은 마치 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청중의 박수를 만류 한 카라얀은 역시 조용히 지휘대를 내려섰다. 독창자, 합창단, 오케스트라도 조용히 무대를 떠났다.(단, 이 디스크에 수록된 연주는 기념 연주회를 전후로 하여 비공개로 녹화된 것이다. 물론 캐스트는 동일하다)


이 무렵만 해도 음악영화의 제작은 음악을 먼저 녹음한 뒤에 영상을 찍을 때 음악을 덧입히는 플레이 백(Play Back)방식을 택하고 있었다. 그러나 카라얀 은 보다 더 효과적인 제작 테크닉 개발에 몰두했고, 일본 연주여행때 NHK 방 송을 방문하여 비디오 중계 기술을 직접 관찰한 뒤 비로소 최첨단 방식에 대 한 확신을 갖고 비디오 사업에 본격 진출 할 결심을 하게 된다.


베르디의 레퀴엠을 지휘했을 때의 카라얀의 나이는 59세 였다. 이 무렵 그는 잘츠부르크에서 바그너의 '발퀴레'를 직접 제작· 연출하고 있었고, 부활절 음 악제를 창설하고 있는 등 대단히 분망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탈리아 오페라 거장인 베르디가 쓴 진혼 미사곡은 그간 여러 가지 표현들로 평가되고 있었는데, 한스 폰 뷜로는 "법의(法衣)를 입은 오페라"로 평했다. 그 것은 일종의 경멸이었다. 그러나 그도 나중엔 이 작품의 진가를 인정하고 자기 가 했던 발언을 크게 후회하고 사과했다고 전해진다.


죽은 자의 영혼의 안식을 기원하는 레퀴엠에서 베르디는 최후의 심판에서 우 리를 구원해 주기를 간절히, 한편으론 매우 극적으로 호소하고 기원한다. 종교 적 정서를 역시 그답게 극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특별한 위상 을 갖는다.


1868년 11월 13일, 위대한 오페라 작곡가 로시니가 영민 했다. 베르디와 리꼬 르디(출판업자)는 이탈리아 작곡자 12명을 모아 각자가 한 악장의 레퀴엠을 쓰 도록 했다. 그것은 유례가 흔치 않은 연작(連作)의 시도였다. 이렇게 해서 만들 어진 작품은 해마다 그의 기일(忌日)에 연주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 계획은 좌절되고 말았다. 베르디는 'libera me,나를 자유롭게 하소서'를 완성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작업이 지지부진했던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베르디가 전곡을 쓰 기로 했다. 그러나 완성이 자꾸 지연되기만 했다. 그러던 중에 그가 존경해 마 지않았던 애국 시인 알렉산드로 만조니가 세상을 떠나자 완성을 서둘렀다. 그 의 유택 앞에서 내년 1주기 때 자기의 레퀴엠을 연주하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1874년 4월에 드디어 완성을 보게 되었다. 베르디의 나이는 60 세였다. 이 작품은 약속대로 만조니의 1주기인 5월 22일 밀라노의 {싼 마르코} 성당에서 초연 되었다. 지휘는 베르디가 맡았고 독창은 스칼라 가극장의 협력 으로 1872년의 아이다 초연에서 큰 성공을 거뒀던 4명의 가수가 맡았다. 초연 의 결과는 열광적인 것이었다. 3일 후인 25일 까지 3회에 걸쳐 재연될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작품은 그의 창작력이 절정에 달했을 때의 걸작일 뿐 아 니라 인간의 죽음과 영원에 대한 과제를 체험하도록 하는 위력을 갖고 있다.


이 비디오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진기한 체험을 제공한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 고 지금은 세계 톱 클래스의 가수로 군림하고 있는 4명의 독창자들의 30대 시 절의 젊은 모습들인 것이다. 특히 오늘의 수염 투성이의 얼굴과 너무도 대조되 는 파바로티의 모습은 일견 생경스러울 정도이다. 한편, 합창단은 여성이 약 50명이고 남성은 그보다 약 10여명이 더 많다. 그것은 '지엄 대왕'의 부분에서 복부점음부로 하강(下降)하는 베이스 성부의 힘찬 위압감을 효과적으로 내기 위한 것과, 테너 성부가 3부로 나누어져서 베이스에 대응하는 두터운 연주 효 과를 고려한 합창 편성의 필요성 때문이라고 보아진다.


알려진 것처럼 카라얀은 스위스의 시크市에 영화의 제작과 배급을 전담하는 영상회사 {코스모텔}을 설립했다(1965년). 이 회사를 통해서 그는 자신의 이미 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기술 개발에 힘을 쏟았고 그 결과 카메라 앵 글, 조명의 효과, 커트의 구사 등등 음악이 영상과 만나서 자아내는 효과의 극 대화에 상당한 접근을 이룩하게 된다. 이때 프랑스의 영화감독인 크르조의 협 력을 많이 받게 되지만 잦은 제작상의 의견 충돌로 6편의 공동 제작 끝에 헤어 지게 된다.


소프라노 레온타인 프라이스는 '포기와 베스'로 명성을 얻기 시작하여 1969년 엔 아이다로 스칼라에 상륙한 대형 가수이다. 카라얀과는 1962년부터 함께 연 주하는 기회를 가졌고 이로써 그녀의 명성은 결정적인 것이 될 수 있었다. 릴 리코 스핀토의 풍부한 성량과 길고 지속적인 호흡, 대단한 컨트롤이 가해진 기 막힌 고음역에서의 피아니시모는 그녀의 특징이다. 게다가 흑인 특유의 비브 라토가 매력을 더한다.


메조 소프라노 휘오렌자 코소토는 벨칸토의 진수를 들려주는 이상적인 발성 의 가수이다. 그 넓은 음역을 완벽하게 제어하는가하면 뛰어난 미모, 극적인 표현력은 가히 정상의 그것이다. 이러한 장점을 무기로 60년대 후반, 그녀는 소프라노와 테너의 인기를 능가하는 수퍼스타로서 스칼라에 군림 했었다. 그 녀는 1958년에 데뷔했다.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카라얀은 그를 일러서 "1세기에 나올까말까 한 가 수"라고 경탄한 일이 있었다.[King of High C]라는 별명으로 불려지는 그는 1965년에 만토바 공작(리골레토)으로 스칼라에 데뷔했고, 베르디의 레퀴엠으 로(1967년, 이 디스크에 수록된 연주)결정적인 성공의 기반을 닦았다. 1968년 엔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가 [Prince of Tenor]라는 제목으로 표지인물로 삼 기도 했다. 전형적인 릴리코 레지에로의 맑고 빛나는 소리를 갖고 있다.


베이스 니콜라이 갸로프, 1959년에 처음으로 스칼라에 등장했다. 이때 그가 노 래한 역은 '보리스 고두노프'에서 [월란]인데, 까다롭기로 유명한 밀라노 청중 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 정도로 압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불가리아 출신의 갸 로프는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에서 차분히 경험을 쌓고 단숨에 서방의 오페 라 무대를 석권했던 인물이다. 힘차고 풍부한 발성과 성량, 베이스 가수에게 요구되는 위엄에 찬 용모로 세계의 오페라 무대를 장악했다. 그는 레퀴엠에서 도 최고의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이 음반이 우리를 감동시키고 놀라게 하는 또 하나의 장면은 카라얀, 프라이 스, 코소토가 시종일관 암보로 지휘하고 노래한다는 사실이다. 철저한 장인정 신과 그 놀라운 기억력에 찬탄의 박수를 어찌 아끼겠는가?


** 악곡의 구성
제 1곡 / 영원한 안식
제 2곡 / 진노의 날
제 3곡 / 봉헌송
제 4곡 / 거룩하시다
제 5곡 / 하느님의 어린 양
제 6곡 / 성채 배령송
제 7곡 / 나를 자유롭게 하소서


영상보기 : https://youtu.be/Xl59Gn602h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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