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촛불은 6월항쟁 완결판

by Dreamy posted May 1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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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촛불은 6월항쟁 완결판"


주권자가 입법부를 시켜 통치자에게 해고 통지를 보냈다. 단호한 탄핵 여론과 광장의 고강도 압박으로 주권자의 뜻을 확인한 국회는, 12월9일 재적 인원 300명 중 234명의 찬성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했다. 가결 정족수 200명을 넉넉하게 넘겼다. 박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나올 때까지 직무가 정지되었다. 헌재 재판관 9인 중 6인 이상이 찬성하면 대통령 탄핵이 확정된다.


익숙한 이분법이 무너졌다. ‘광장의 시민과 선출된 국회’ ‘직접민주주의 대 대의민주주의’라는 이분법으로는 12월9일의 결과물을 설명할 수 없었다. 대통령의 1차 대국민 사과(10월25일)부터 따져 격동의 7주 동안 실제로 벌어진 일은 이 이분법을 훌쩍 뛰어넘는다. 광장의 시민은 입법부를 집요하게 동원해 행정부 수반에게 책임을 묻는 데 성공했다. 이것은 대의제에 대한 직접민주주의의 승리일까? 그보다는 대의제를 놀랍도록 훌륭히 다루어낸 주권자의 승리였다. 2016년 겨울, 한국 민주주의는 1987년 여름의 광장으로부터 또 한 단계 도약했다.



11월26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제5차 촛불집회가 서울 광화문과 세종로 일대에서 열렸다. 이날 주최측 추산 약 190만명이 모였다.

1987년 여름의 광장은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다. 직선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최종 해결책으로 보였으나 곧 난제를 던져주었다. 일단 선출한 대통령이 더 이상 민주적 책임성에 구속받지 않을 때, 주권자는 그를 견제할 방법을 알지 못했다. 오랜 왕정과 군부독재의 경험 직후에 등장한 직선 대통령은 ‘선출된 왕’과 잘 구분되지 않았다. 선거제도는 민주화되었으되 사회의 구동 원리가 민주적으로 재편되려면 통치자와 주권자 모두 적응이 필요했다.


‘막 나가는 통치자’를 견제하는 헌정적 원리는 크게 두 축으로 구성된다. 첫째, 수직적 견제의 원리다. 시민이 직접 통치자를 끌어내리려 시도하는 저항권이 대표적이다. 발동된다면 비상 상황이다. 둘째, 수평적 견제의 원리다. 민주적 정통성의 또 다른 원천인 입법부를 통한 견제가 이에 해당한다. 평시에 원활히 작동해야 할 견제 원리이지만, 1987년 이후 입법부가 이를 제대로 구현했다고 보는 여론은 소수다.


2016년 겨울의 광장은 ‘수직’과 ‘수평’의 기로에 서 있었다. ‘수직’은 위험했다. 저항권이란 체제 변동까지 감수하는 고비용의 선택이었고, 헌정체제 자체를 다른 것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요구는 거의 없었다. ‘수평’은 못 미더웠다. 광장에 선 주권자들은 대통령 퇴진이라는 고도의 선택을 해낼 만큼 유능한 입법부를 경험한 적이 없었다.


11월 한 달 동안 광장이 보여준 선택은 그래서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지도부 없는 100만 인파가 서로 토론한 적도 없이 고도의 합의와 규율을 유지했다. ‘수직’은 분명히 기각됐다. 비폭력에 대한 광장의 합의는 너무나 단호해서 경찰 차벽에 붙인 꽃무늬 스티커마저 도로 떼어줄 정도였다. 강경파 집회 참석자들은 “경찰과 <조선일보>한테 칭찬받는 시위”라고 야유하기도  했다.


2016년, 광장이 정치를 발견했다


광장의 주류가 채택한 비폭력 노선은 차라리 단호한 전략 기조였다. ‘수직’을 우선 제쳐둔 상황에서, ‘수평’이 작동하기를 그저 손 놓고 기다리기에 입법부는 미덥지 않았다. 그러니 남은 경로는 입법부가 제대로 움직이도록 끊임없이 압박하는 것이었다. 광장은 정확히 그 방향으로 집중했다. 압박의 성공 가능성은 집회의 규모, 구성의 다양성, 결집의 지속성에 달려 있었다. 이 요소들이 끝까지 유지되어야만 입법부를 움직일 전망이 있었다. 새누리당에서 최소한 28표를 떼어내야 한다는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를 향해, 광장은 이렇다 할 리더도 없이 집중력을 유지했다. 결국 62표 이상을 집권당에서 가져오는 대승을 이뤄냈다.


폭력은 집회의 규모와 다양성과 지속성 모두를 위협할 위험 요소였으므로 제어당했다. 100만명 단위 집회가 매주 도심을 가득 채우면서도 물리적 충돌 한 건 벌어지지 않는 집회 양상을 외신은 놀라워하며 보도했다. 강경파 집회 참석자들은 광장 주류의 태도가 오히려 다양성을 억누르는 폭력이라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는데, 묘하게 본질을 꿰뚫는 지적이었다. 광장에서 비폭력 노선은 단호하게, 어떤 의미로는 폭력적으로 관철되었다. 이것은 ‘착한 게 좋다’는 식의, ‘보수 언론에 잘 보이자’는 길들여진 태도와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수직’을 기각하고 ‘수평’을 압박한다는 전략 기조와 어긋난 강경파를 사실상 힘으로 제압해버렸다.


명시적으로 합의한 바 없지만 이것은 광장의 정치적인 결단이었다. 광장에 선 주권자들은 지독히 이기고 싶어 했고, 이길 수 있는 수단이 무엇인지를 집요하게 탐색했으며, 그 과정에서 입법부라는 주권자의 수단을 결정적으로 재발견했다. 폭력이 배제된 것은 이 결정적 수단을 작동시키기 위해서였다.



ⓒ시사IN 이명익

12월7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위한 야 3당 결의대회’에서 야 3당 지도부와 국회의원·당직자들이 대통령 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다.

광장의 압박에 반응해 탄핵을 향해 가던 입법부는, 11월29일 대통령 3차 담화 이후 잠시 대오가 흐트러졌다. 새누리당 비박계가 탄핵 대신 대통령이 제안한 ‘합의에 의한 사퇴’로 회군하면서 탄핵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그리고 12월3일 토요일에 6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이날 광장이 보여준 압박의 밀도는 역사에 기록될 만했다. 주최 측 추산 전국 232만명이라는 규모도 초유의 사건이었지만, “우리는 타협할 권리를 입법부에 준 적이 없다”라는 주권자의 분노는 입법부에 거대한 공포를 심어주었다. 폭발 직전의 기운이 넘실거렸던 6차 집회의 분위기는, 만일 탄핵안이 부결될 경우 한편에 치워두었던 저항권 행사가 선택지로 부활할 것이라고 강하게 암시했다. 6차 집회 이후 국회에서는 “탄핵이 부결되는 날에는 촛불이 국회를 태워버릴 것이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새누리당 비박계는 곧바로 반응해 탄핵 대오로 복귀했다. 국회의 탄핵 찬성표 234표는 재적 인원의 78%다. 같은 날 발표된 한국갤럽 정례 여론조사의 탄핵 찬성 의견 81%와 큰 차이가 없다.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입법부는 결국 주권자의 의사에 구속받았다.


이렇게 해서 2016년 겨울의 광장은 정치를 발견했다. ‘광장’과 ‘제도권 정치’라는 익숙한 이분법은 하나로 통합됐다. 2016년 이전에 광장이 열릴 때면 그곳은 반(反)정치, 탈(脫)정치의 에너지로 끓어올랐고, 광장과 정치는 거의 언제나 양자택일의 문제로 간주되었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정치를 혐오하고 직접행동을 찬양하는 광장의 정서에 끊임없이 비판 목소리를 내왔다. 그는 이번에 중요한 변화를 봤다. “이 광장은 반(反)정치로 달려 나가는 대신 민주주의가 제공하는 권력의 수단을 놀랍도록 능숙하게 사용해서, 결국 더 효율적으로 시민권력을 행사했다. 입법부가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주권자의 도구라는 인식이 폭넓게 공유되었고, 실제로도 입법부를 뜻대로 작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탈정치 담론이 주력이었던 2008년의 촛불과 비교하면 차이는 명백하다. 2016년의 광장에서 민주주의에 반드시 필요한 주체, ‘정치적 시민’이 탄생했다. 이건 연구자들이 꼭 책을 써야 할 사건이다.”


2016년 겨울의 광장이 재발견한 무기는 입법부만이 아니었다. 헌법 역시 주권자의 도구상자에 추가됐다. 광장 최고의 연사로 떠오른 방송인 김제동씨는 무대 발언 대부분을 헌법 소개에 할애했다. “권력을 국민이 아니라 최순실로부터 나오게 했으므로 헌법 제1조 1항 위반” “사사로이 다른 사람에게 권력을 줬다면 헌법 제2조 위반”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지 않았으니 헌법 제20조 2항 위반” 등 그의 발언은 헌법 조항을 넘나들었다. 헌재가 탄핵 사유로 받아들일 만큼 전문적이지는 않았지만, 주권자가 헌법을 도구로 가져왔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광장의 주권자들은 헌정체제가 망가졌다고 느꼈고, 헌정을 복원하길 원했다. 이것은 체제 변동 시도가 아니었다. 체제에 대한 자신감, 체제가 주권자의 명령에 복무할 것이라는 믿음, 그러지 않을 경우 저항권을 발동할 수 있다는 위협으로 이루어진 패키지였다. 헌정을 복원하자는 요구를 내거는 순간, 헌법은 자연스럽게 주권자의 무기가 된다. 헌법 제1조(‘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2008년의 광장에서도 중요한 슬로건이었다. 하지만 2016년의 광장은 국민의 최종 권력을 선언하는 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헌법에 통치자가 어떻게 미달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적시하며, 그 책임을 물을 경로를 찾아냈다.



ⓒ연합뉴스

11월29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실에서 제3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뒤 돌아서 나가고 있다.

주권자가 시민권력의 도구를 다루는 방식에 적응하고 있다. 이만큼 기존 엘리트에게 나쁜 소식은 흔치 않다. 엘리트 블록은 광장과 입법부의 갈라치기에 발 빠르게 나섰다. 탄핵 가결 전에 나온 12월9일자 <조선일보> 사설은 “탄핵 이후 절차는 헌재에 맡기고 여야는 국정을 수습하라”며, 이제 더 이상 집회 여론에 휘둘리지 말라고 주문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직후 발표한 대국민 담화에서 “이제는 거리의 목소리가 국가 위기를 극복하는 동력으로 승화되도록 간곡히 당부드립니다”라고 했다. 광장의 정치는 영원할 수 없고, 언제인가 일상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헌정체제가 충분히 복원되었다는 주권자의 판단이 나오기 전에 박근혜 정부와 보수 언론이 먼저 나섰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촛불은 ‘6월 항쟁’의 마무리일 수도


입법부와 헌법은 이른바 ‘87년 체제’의 도구상자 안에 언제나 들어 있던 무기였다. 이를 사용하기 위해 헌법이 바뀔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1987년 이후에도 주권자들은 이 무기들을 사용하기보다는 대체로 외면했다. 입법부 구성이 터무니없이 불리하거나 선거 일정이 지나치게 멀어서 제대로 사용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2008년의 광장이 둘 모두에 해당한다), 그렇다 해도 광장에서 정치는 잠재적 도구가 아니라 문제의 근원으로 취급받았다. ‘87년의 도구상자’는 온전히 활용된 적이 사실상 없었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87년 체제가 수명을 다했다는 평가는 너무 쉽게 상식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30년 만에 ‘6월 항쟁’을 마무리하는 중일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이 관점으로 보면, 한국 사회에는 “다음 헌법을 어떻게 만드는가?”보다는 “더 잘 작동하는, 우리 삶에 더 좋은 민주주의를 어떻게 만드는가?”가 더 시급한 질문이 된다.


이제 한국 사회는 ‘탄핵 이후’와 ‘광장 이후’를 디자인하는, 지금껏 가보지 않은 길로 들어섰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는, 탄핵 직후로 예정되어 있던 총선이 모든 논란을 해소할 일종의 최종 심판으로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2016년 탄핵 이후의 한국 사회는 길을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 정당성을 상실한 대통령에게 해고 통지를 보내는 데까지는 놀라운 합의가 유지되었다. 하지만 가보지 않은 길을 만드는 과정까지 그 수준의 합의가 유지될 가능성은 낮다.


무엇이 더 잘 작동하는 민주주의일까. 더 좋은 민주주의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공통의 목표는 일단 성취했고, 이제는 저마다 답이 다를 질문을 받아들었다. 혼란과 시련, 그에 따른 정치 혐오가 어느 정도는 필연으로 대기하고 있다. 2016년 겨울의 광장은 정치에 맞서서 승리한 경험이라기보다는, 정치를 도구로 쓰는 데 성공하여 승리한 경험이었다. 이 경험이 예고된 시련을 헤쳐 나갈 길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인상적인 승리를 거둔 주권자들이 다음 도전 과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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