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은 참 순수하고, 감성이 풍부한 시기인것 같습니다.
오래 잊고 있었는데, 우연히 그때 썼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분명 제가 쓴 것은 맞는데 참 새롭군요.
아침은 싱그러이 내 옅은 정신을 간질이고 맑은 아침빛이 내 눈을 비추면, 이제
일어나 막 새 단장하는 새악시처럼 사뿐하고 긴장된 마음으로 그대를 떠올린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사랑하였고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이 떠올리듯 나도 그
대에게 하나의 설래는 기억이었으면 한다. 새 풀을 뜯다 발소리에 문득 놀란 새끼
사슴처럼 날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다. 하나의 풀꽃 하나의 나뭇잎을 가슴에 심고
, 봄길을 걸어가는 풋자란 처녀의 물결치는 가슴처럼 내 글씨를 읽어주었으면 좋
겠다.
눈 오는 밤이나 이슬 내린 아침, 그냥 잠이 오지 않는다며 향기 있는 차 한잔과
펜을 들고 정성스레 써 놓은 편지. 무수한 상념을 들고 쓰고 또 썼던 마음이 가
득 담긴 단어들을 아무런 사심이나 부담 없이 푼더분히 받아줄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제나 네 이름을 생각하면 어느 샌가 눈에 글썽이는 물방울들과, 깨어있을 때는
모든 것이 네 이름이 되어버리는 못난 정신병을 알아주어, 단지 손을 잡아주며
환히 웃기만 한다면, 그것이 그 어떤 연극이라 하더라도 어느새 인생을 약속해 버
릴 것 같은 내 못난 정신병을 알아주어, 한 두 번쯤 지나가는 우연한 만남 속에
건조한 '안녕', 애써 돌리는 눈빛만은 짓지 말아 주었으면.
그대를 본 날마다 꾸는 내 꿈을 아는지. 그대에게 하고 싶은 무수한 말들은 한
마디도 제대로 꺼내지 못한 채 쳐다보지 않는 네 앞에 애써 서서 웃고만 있는 내
슬픔. 그런 날 스쳐 지나가는 내 안타까움의 꿈을 아는지. 설잔 잠을 달래며, 다
시 눈앞에 나타나는 하루의 시작을 바라보며, 지저귀는 새소리에 그대 모습을 담
아 다시 한숨으로 창 밖을 내다보는 꿈이 지나간 아침의 허무를, '또 그러고 있느
냐.'고 '어디 아픈 거냐.'는 걱정 섞인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면 이러는 내 자신이
갑갑해 지고 가슴 속 가득 짓누르는 커다란 산을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대를 본 후 부쩍 는 시를 쓰고 읽는 시간. 그 시간에는 늘 그대를 만나고 그
대를 그리고 다시 그대의 눈망울을 떠올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생각과 감상에 빠
져도 다시 돌아오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아 있는 시의 허탈함. 내가 쓰는 모든 글
자에는 네 이름이 숨어있다. 길을 걷다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라도 볼 때면 멀리에
서부터 내 시선은 멈추어 버리고 조마조마 다가오다 눈가까지 젖어오는 바보 같은
인간. 한심한 사람의 이젠 안타까움으로 가득 찬 가슴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네 앞에서 사라지는 내 자존심을 알겠니. 작은 모습 못난 마음 부담스러울 지라
도, 작은 고개 끄덕임 한 번으로도 나는 어떤 힘듦도 참아낼 수 있을 것임에, 아
무 느낌 없어 보이는 그대 가슴에 조그만 틈새라도 내어줄 수 있겠니. 기다림에
지치기 전에. 간절히 떠오르는 나의 모든 생각이 헛된 것이라면, 진실로 그대 나
원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대의 한 번 고개 돌림에도 돌아설 것임에.
하여, 내 진실을 받아줄래. 아무런 부담도 가지지 말고, 탁자 위에 들꽃 하나
더 얹은 듯, 갓 나온 수필집에 작은 책갈피 하나 끼워 놓은 듯. 단지 네 삶에 조
그마한 변화로만 여겨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시간이 부리는 잊혀짐에 영향
받지 않고, 네가 웃고 싶을 때나 울고 싶을 때 소리내어 와 웃고 울 수 있는 크지
않은 풀밭, 항상 그 거리에 있으면서도 투정부리지 않고 때를 맞춰 들꽃 줄기나
하나 세우는 그런 풀밭 같은 사람이 네게 되어 영원히 거기에 있고 싶다. 한 가지
말만을 눈 속에 담고.